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누리호 실패의 교훈

김경택 경제부 차장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첫걸음을 보면서 한 모던록 밴드가 문득 떠올랐다. 이 밴드는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공연을 연다면서 공연장까지 빌려놨는데 공연 당일까지 새 앨범을 발매하지 못했다. 결국 기념 공연은 나오지도 않은 미완의 앨범 일부를 선보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전에도 발매 일정이 몇 차례 미뤄진 뒤였다. 공연장에서 연주됐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곡으로 채워진 새 앨범은 공연 8개월 뒤에야 공개됐다. 밴드 언니네이발관의 5집 앨범 ‘가장 보통의 존재’는 이렇게 나왔다. “광적인 교정벽”이 낳은 이 앨범은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 ‘최우수 모던록 음반’에 선정되는 등 명반 반열에 올랐다. 한 곡의 여러 버전을 조각조각 떼어내 이리저리 조합하거나 아예 새 버전을 만드는 일을 반복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었다. 만약 밴드가 수익을 우선시하는 업계 관계자의 발매 일정을 크게 의식했다면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곡 작업과 우주 발사체 개발은 서로 다른 일이다. 하지만 세간의 반응을 의식하기보다는 끝까지 간다는 심산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선 예외가 별로 없다. 게다가 우주개발산업은 단순히 우주 여행의 꿈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대한 발사체를 우주로 날리는 기술을 확보했는지 여부는 각국의 국방력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우주 발사체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는 모두 대형 로켓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리는 데 쓰이는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발사체에 위성을 탑재하면 우주 발사체, 타깃 제거를 위한 탄두를 붙이면 ICBM이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것으로 기록된 유인 우주선 아폴로 11호에 들어간 로켓을 개발한 사람이 독일의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이라는 점도 이와 관련이 깊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인 V2를 개발했던 그는 독일이 패전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일했다. 미사일 전문가가 우주개발산업에서 성과를 낸 셈이다.

누리호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군사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볼 필요가 있다. 한 전문가는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야 경쟁력 있는 무기체계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는 “실패하지 않고 당장 눈앞에 설정된 목표 달성에만 급급하다 보면 안전한 성공에만 머무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보다는 ‘많은 실패를 통해 더 높은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 필요한 곳이 바로 첨단산업 분야라는 얘기였다. 최소한의 시험평가 기준을 충족하는 단기 목표를 성취하는 것은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이뤄낼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 너머로 나아가기 위해선 ‘필연적인 실패’를 거듭해야 한다고 한다. 실패함으로써 실패했던 상황에서의 기술적 문제와 개선점을 정확히 계산할 수 있고 단기 목표를 넘어선 커다란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우주개발산업 분야 선진국 또는 첨단 전략무기를 보유한 강대국에는 무기 개발 여건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미사일 개발자들은 바다 아닌 육지를 향해 미사일 시험발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몇몇 국가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다만 연구·개발 여건을 갖추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목표 설정이다. 이번 발사는 상업용 위성 발사 산업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추가 비용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ICBM 기술 개발로 전환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갈 길이 너무 멀다. 궤도 안착에 실패한 누리호를 과포장하는 대신 실속 있는 목표 설정이 우선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 투자라고 해서 모두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