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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전두환 비석

라동철 논설위원


전직 대통령 휘호석이나 기념석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다. 치적을 알리려는 최고 권력자와 그 권위에 기대려는 이들이 남긴 흔적들이다. 그중에서도 입길에 가장 자주 오르는 비석은 광주 망월동 5·18민족민주열사묘역 입구 땅에 박혀 있는 ‘전두환 비석’일 것 같다.

이 비석은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1982년 3월 전남 담양군 어느 마을에 묵은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 마을’이란 글이 새겨진 비석은 마을 입구 도로변에 세워졌으나 이후 수난을 겪었다. 6월 항쟁이 펼쳐졌고 이후 전씨가 권좌에서 물러나자 한 청년이 해머로 비석을 깨뜨린 것. 마을에서 다시 제작했는데 소식을 접한 광주 지역 재야인사들이 89년 1월 몰려가 새 비석마저 곡괭이로 내리쳐 부쉈다. 재야인사들은 돌아갔지만 함께 찾았던 당시 전남일보 사진기자가 두 동강 난 비석 윗부분을 5·18 희생자들이 묻힌 망월동 묘역으로 싣고 와 입구에 파묻었다고 한다.

이후 묘역 참배객들은 이 비석을 밟고 지나갔고 정치인들도 가세했다. 5·18 희생자들이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로 옮겨진 후에도 이 전통은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후보 때와 2016년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둔 시기에 방문해 비석을 밟았고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동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지난 22일 비석을 밟았다.

유치한 퍼포먼스라고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지만 비석 밟기는 전 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다. 쿠데타와 폭압적 통치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권력을 사유화해 막대한 뇌물을 챙겨 법적 처벌까지 받고도 잘못이 없다고 뻗대는 태도가 초래했다. 추징금을 900억원 넘게 미납했는데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면서 호화 주택에, 골프를 즐기는 뻔뻔함으로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비석 밟기는 처절하게 반성해도 모자랄 판에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해 온 그에 대한 국민들의 작은, 그러나 통쾌한 복수인 셈이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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