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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의 에듀 서치] ‘교육판 오징어게임’ 같은 수능, 공정한 입시는 가능한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참가자들과 대입 수험생들이 자꾸 겹쳐 보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게임 참가자를 한 번 봅시다. 정확히 442명입니다. 최초 456명 중 첫 게임 뒤 201명이 생존했고 바깥 세상에 나갔다가 돌아온 인원이 187명입니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는 42만6344명이었습니다. 올해는 이보다 늘어 44~45만명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오징어게임 442명 중 1명이 거액을 받습니다. 대학 입시에 적용하면 오징어게임 1등은 수험생 1만명에 해당합니다. 공교롭게도 ‘스카이’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 정원을 합치면 비슷합니다. 의·약학 계열, 로스쿨 정원을 합쳐도 얼추 비슷하죠. ‘돈벼락’까진 아니어도 많은 걸 누릴 가능성이 열린 이들입니다. 어쩌면 세상은 매년 나오는 ‘1만명’이 재생산하는 좀더 큰 오징어게임인지도 모릅니다. 프론트맨 이병헌이 오징어게임 1등이었던 것처럼.

대입 수험생이 오버랩되는 더욱 명확한 장면이 있습니다. 오징어게임 몇몇 관리자가 게임 탈락자 장기 적출을 대가로 전직 의사 111번에게 게임 정보를 몰래 흘려주다 프론트맨에게 적발됩니다. 프론트맨은 이들을 응징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모두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게 경쟁하지, 불평등과 차별에서 시달려온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야, 너희가 그 원칙을 깼어.”

공정 이슈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장면입니다. 근력의 우열로 승부를 가르는 줄다리기는 과연 공정할까요. 건장한 남성팀이 여성·노인이 섞인 팀에 끌려오는 일은 현실에선 일어나지 않습니다. 번외 경기였던 한밤의 살육전,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게임도 비슷합니다. 단지 똑같은 룰로 승부를 내는 기계적 공정을 프론트맨은 공정이라 확신에 차 말합니다. 설탕 뽑기나 유리 다리 건너기는 우연과 행운을 공정으로 포장해놨습니다.

대입 게임은 어떤가요. 돈 있는 부모를 만나는 건 우연과 행운입니다. 부유층은 저소득층보다 사교육비를 5~6배 더 씁니다. 공식 통계로 잡히는 것만 그렇습니다. 사회·경제적 차이에서 파생되는 종합 격차는 측정하기도 어렵습니다. 공교육은 격차를 좁히기엔 턱없이 부족하죠. 줄다리기처럼 뻔한 게임입니다. 이런데도 같은 문제를 같은 조건에서 푸는 수능이 공정한가요. 사교육으로 철저히 관리된 학생부로 ‘잠재력’ ‘발전 가능성’을 살핀다는 학종은 또 어떤가요.

짝을 찾지 못했던 212번 한미녀가 “깍두기, 소외된 약자를 버리지 않는 게 옛날 애들이 지키던 아름다운 규칙”이라며 절친(혹은 아내)을 죽이고 돌아온 참가자들을 “낄낄” 비웃습니다. 일부에서 생색내듯 이뤄지는 사회적배려대상자 혹은 지역균형 전형을 공정 내지는 배려로 포장하는 현실을 조롱하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왜 이런 교육을 받았고 자녀에게도 강요하고 있을까요. 탈출구는 없는 걸까요. ‘교육판 오징어게임’의 해설서 같은 책이 나와 소개하려 합니다. 박성수 전북대 사무국장이 펴낸 ‘개천의 용, 공정한 교육은 가능한가’입니다(도서출판 공명·사진). 저자는 연세대를 나와 행정고시를 거쳐 교육부에서 고위공무원단으로 올라간 인물입니다. 프론트맨까진 아니어도 ‘세모’와 ‘동그라미’를 지휘하는 ‘네모’쯤 되는 내부자입니다.

프론트맨이나 VIP들 허락 없이 낸 책이란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오징어게임의 구조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담겼습니다.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수능 성적의 지역별 계층별 결과는 공개되어야 한다. 낙인효과를 이유로 하는 비공개는 교육격차 완화라는 공적 책무를 회피하는 좋은 명분이 된다.” “실태를 공개하면 특정 지역의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미공개 주요 논거다. 격차를 인정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으려는 노력이고 격차를 더 심화시킬 뿐이다.”

정부와 대학들이 대입 정보를 숨기는 상황에 대해 ‘공적 책무 회피’라는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책은 불공정이 발생하는 각종 지점들, 수능으로 대표되는 시험능력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하고 고교학점제 도입 필요성과 공교육 강화를 역설합니다.

백미는 역시 대입 파트입니다. 문재인정부 초기 치열한 대입 논쟁이 있었죠. 저자는 당시 담당 국장이었습니다. 논쟁 한 복판에서의 수많은 토론과 경험, 고민들이 책에 녹아 있습니다. 그는 이를 ‘사회적 대학입시제도’ ‘사회적 교육정책’이란 용어로 정의하고 대안을 고민하도록 합니다. 저자는 이 용어에 대해 “경쟁은 인정하되 그 경쟁이 유의미한 지적인 경쟁이 되어야 하고, 그 결과가 우리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경쟁을 유도·관리하며 나아가 사회적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정책”이라며 “특히, 돈이 실력이 되는 교육 시스템 개선을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의 서평은 이렇습니다. “‘헬조선’ 발원지는 교실이다. 이 나라의 교실은 성숙한 민주시민이 아니라, 오만한 승자와 굴욕감에 시달리는 패자를 길러낸다. 지난 1년 우리 교육의 ‘전교 1등들’이 보여준 행태는 한국 교육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생생히 증언한다. 여기, 놀랍게도, 오랜 기간 교육정책의 현장에서 활동해온 교육부 관료가 ‘사회적 교육정책’을 외친다. 교육의 변화를 열망하는 독자라면,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과 함께 읽어 볼만한 역작이다.”

어쩌면 책에 오징어게임의 탈출구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네모의 용기 있는 외침이 묻히지 않길 기원해 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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