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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보수의 롤모델

이영미 영상센터장


지난 한 주, 대선 레이스 주인공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었다. ‘사과 받는 개’ 사진으로 정치판 이슈를 휩쓴 덕에 국민의힘 토론회를 향한 관심도 폭발했다. 토론을 지켜보다 야권 주자의 박정희 칭송 경쟁을 목격했다. 윤 전 총장의 ‘전두환 정치’ 발언으로 논란이 번진 다음 날 벌어진 일이다. 사용된 어휘도 놀라웠지만 이견이 없어서 더욱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지난 20일 대구경북토론회에서 “박정희 대통령 같은 경우는 어떻게 보면 용인술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용인술의 신화이고 레전드”라며 “늘 묵상을 하면서 사람 문제에 부닥쳤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풀어 갔을까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헌사 다음은 감탄이었다. 윤 전 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은 권력을 쥐어줄 때는 늘 나눠서 견제하게, 남용되지 못하게 하고(…) 인사 발표가 나면 국민들이 야아, 할 정도의 그런 사람을 뽑아서 절대적 권한을 주고”라며 “권력자들이 압박하고 하는 그런 관여를 철저하게 배제를”이라고 말했다. 토론회 안팎 홍준표 의원 주장은 차라리 평범했다. 그는 “과학계를 가장 중시한 대통령”이자 “쿠데타 후 자유민주주의로” 향한 끝에 “60년 후 선진국 시대를” 만든 박정희 장군의 업적을 평가했다. 그나마 평가가 박했던 게 유승민 전 의원이었다. 가난 해방과 민주주의 파괴의 공과를 함께 보자고 했다.

박정희 시절이 대통령 용인술의 전성시대였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그가 인사를 발표할 때마다 국민들이 “야아” 탄성을 질렀다는 얘기도 처음 들었다. 파국으로 치달았던 박정희와 측근의 비극은 전설적 용인술의 결과라는 건가. 그 시절 상호 견제는 감시의 기술이자 독재자의 자기방어 본능이었을 뿐이다. 민주주의 전략이 아니다. 무엇보다 창의적인 건 독재 ‘권력’이 ‘권력’ 남용을 막았다는 대목이다. ‘사과’를 하고 ‘사과’를 주는 것처럼 앞의 권력과 뒤의 권력은 서로 다른 뜻인 건가. 이런 단어들이 어떻게 한 문장으로 조립되는지 모르겠다.

윤 전 총장이 전두환을 말했을 때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망언이 대선 전략이냐”고 비판했다. 조롱이었지만 토론회를 보고 나니 보수 정치의 지형도 위에서 얼마간 맞는 얘기 같다. 지금 보수를 설득할 리더십은 박정희, 전두환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국부는 너무 멀고,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2명은 감옥에 있다. 정치적 복권까지 갈 길이 멀다.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이 박정희란 이름을 꺼낸 건 현재 보수 정치가 가진 거의 유일한 작동 버튼이기 때문일 거다. 다만 모두 눌렀다는 게 함정이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전두환의 정치가 아닌가 싶다. 눈에 띄고, 화끈하고. 두들겨 맞았지만 신호는 전달됐다.

주 120시간 노동과 부정식품 먹을 자유, 건전한 페미니즘, 아프리카나 하는 손발노동. 그간 윤 전 총장이 했다는 실언이란 걸 살펴보면 적어도 전두환 정치 발언과 정서적으로는 일관성을 갖는다. 교과서처럼 깔끔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진짜 이치를 전달하는 윤석열의 진심. 예쁜 말이나 정치적 올바름은 상관없다는 윤석열의 우직한 태도. 그걸 담아 쏘아 올렸더니 보수 유권자들이 열광했다. 잇단 논란에도 지지율이 버티고, 중진이 윤 캠프에 몰려간 비결이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밖에서 보수 정치를 바라보자니 착잡하다. 제1 야당의 토론회는 보수 정치가 전 국민 앞에서 미래 리더십을 선보이는 자리다. 그런 곳에서 박정희를 묵상하는 것으로 보수는 어떤 미래를 설득하려는 건가. 토론회에서 대장동의 범인은 못 밝혀도 좋은 개발의 청사진 정도는 내놓을 줄 알았다. 우리는 이렇게 하겠다고 설득할 줄 알았다. 고작 박정희·전두환 논란이라니.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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