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 따라 세속을 떠나다

가을빛 가득 머금은 ‘제2 금강산’… 충북 보은 여행

충북 보은군 보은읍 장재리와 속리산면 갈목리를 잇는 말티재 정상에 조성된 전망대 아래에 180도로 꺾어지는 S자 굽잇길이 이어지고 있다. 꿈틀거리며 고개를 올라오는 거대한 구렁이를 닮은 약 1.5㎞의 도로 주변 나뭇잎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백두대간 속리산(俗離山)은 ‘세속을 떠난 산’이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의 시 ‘산은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俗離 俗離山)에서 유래했다. 조선 8경 중 하나의 명승지로 제2 금강산으로 불렸다. 충북 보은군·괴산군, 경북 상주시에 걸쳐 있고 일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최고봉인 천왕봉(1058m)을 포함한 주요 봉우리는 보은군에 속해 있다.

이 산에 조선 7대 왕에 오른 수양대군 세조(世祖·1455~1468)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계유정란을 일으켜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재임 기간 내내 몸과 마음의 병을 앓았던 세조가 노년에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올랐다가 씻고 내려온 곳이다.

속리산으로 들어가는 관문은 말티재다. ‘높다’는 뜻을 지닌 마루의 준말인 ‘말’과 고개를 의미하는 ‘티’와 ‘재’가 합쳐진 이름이다. 보은읍 장재리와 속리산면 갈목리를 잇는 고갯길로,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옛길이다.

세조는 피부병으로 요양 차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말티재를 넘었다. 당시 길이 가팔라 세조는 어가(임금이 타는 가마)에서 내려 말로 갈아탄 것으로 전해진다.

말티재 입구에서 해발 430m인 정상까지는 약 1.5㎞. 180도로 꺾어지는 S자 굽잇길을 열두 번 돌아야 고갯마루에 닿을 수 있다. 고갯마루에는 터널 형태로 된 ‘백두대간 속리산 관문’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 말티재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높이 20m의 전망대 끝에 서면 발아래 구불구불한 도로가 펼쳐진다. 길 주변 나무에 가을의 붓질이 한창이다. 잎사귀가 울긋불긋 화려하게 치장 중이다.

말티재에서 4㎞쯤 가면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2품송이 자리하고 있다. 500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는 지체 높은 소나무다.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우산 모양의 큰 소나무 아래 가지가 임금이 탄 가마에 걸리지 않도록 스스로 번쩍 올라갔다고 한다. 세조가 한양으로 돌아갈 때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피하기도 했다. 세조가 정2품 벼슬을 내려 고마움을 전했다. 1993년 돌풍에 한쪽 큰 가지가 부러지면서 대칭이 깨졌지만 여전히 품위 있는 자태를 자랑한다.

세심정까지 이어지는 세조길에 들어서는 탐방객들.

법주사 입구에 ‘세조길’이라는 팻말이 붙은 탐방로 출발지를 만난다. 세심정까지 약 2.4㎞ 이어진다. 대부분 평지인 데다 바닥도 잘 정돈돼 있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눈썹바위,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한 목욕소 등 볼거리도 많다. 종점은 ‘마음을 씻는 곳’이라는 정자 ‘세심정’이 있던 장소다.

거대한 암석이 구름과 맞닿을 듯 하늘 높이 치솟은 문장대.

세조길이 성에 차지 않으면 복천암을 거쳐 문장대(1054m)에 오를 수 있다. 이후 능선을 따라 신선대(1026m)와 천왕봉에 닿을 수 있다. 신선대에서 임경업 장군의 무술 연마 수련도장이었던 경업대를 지나는 원점회귀 코스가 인기다.

경업대에서 본 속리산 주 능선. 우뚝한 바위가 입석대다.

속리산 탐방로가 한결 산뜻해졌다. 속리산국립공원 지정(1970년) 이전인 1968년부터 속리산 고지대에서 운영 중이던 냉천골·금강골·보현재 등 휴게소 3곳이 철거되고 탄소 흡수량이 높은 참나무 식재 등으로 생태 복원이 진행 중이다. 친환경 에너지(태양광)를 이용하는 긴급 휴대전화 충전 시설도 설치돼 탐방객들의 편의가 향상됐다.

여행메모
말티재 인근 솔향공원 스카이바이크
보은 특산품 대추… 31일까지 온라인 축제

당진영덕고속도로 속리산나들목에서 25번 국도를 타고 가다 장안면 구인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말티재가 나온다. 말티재를 넘지 않고 성족리 동학터널과 갈목리 갈목터널을 지나는 속리산 지름길도 있다.

말티재 일대에는 집라인 등 다양한 레저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갈목리에는 ‘숲 체험마을’이 조성돼 있다.

솔향공원에서는 높이 2∼9m의 레일을 따라 소나무 숲 사이를 달리며 솔 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스카이바이크가 인기다. 총 1.6㎞의 코스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25분.

보은의 특산품은 대추다. 비타민C가 풍부하고 노화 방지에 좋다. 속리산국립공원 주변 식당에 가면 ‘대추한정식’을 내놓는 곳도 많다. 대부분 버섯과 산채요리도 함께 제공한다. 코로나19 여파 속에 보은대추축제가 오는 31일까지 온라인으로 진행중이다.



보은=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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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색 고운 아기 단풍… 마음까지 물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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