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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K대중문화 시대의 대학 역할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단군 이래 경제적으로 표현하면 최대 호황이고, 문화적으로 표현하면 최고 경사다. 한국 대중문화를 두고 하는 얘기다. 최근 영국 BBC는 “오징어 게임은 서구 전역에 퍼진 한국문화의 가장 최근 물결”이라고 평가했다. BTS, 블랙핑크는 음악계에서 누구나 아는 이름이 됐으며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는 할리우드에서 존재감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언제 우리 대중문화가 전 세계를 앞마당처럼 여기며 뛰어놀았던 적이 있었던가. K드라마가 K팝과 같은 수준의 팬덤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인상적이다. 장르가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K대중문화 시대라 이름 붙일 만하다. 한류가 자랑스러운 매력 자본으로 등극한 것이며 세계 문화시민권을 향유하는 셈이다.

여러 해 전 황석영 작가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고민은 세계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런가 하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이 한창이었던 적도 있었다. 한국사회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가늠이 된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선진국을 특징하는 징표의 하나로 대중문화연구를 꼽는다. 대중문화만큼 모방에 의한 동원의 폭이 넓은 것도 없다. 일단 매력으로 여겨지는 순간 지금과 같은 시간과 공간의 응축 시대에는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대중문화는 산업을 동반하기 마련이고, 문화산업에 의한 부가가치의 잠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의 결정판이 미국이다.

미국 대중문화의 형성과 문화와 산업의 연결고리로서 대학이 담당한 역할은 상당하다. 가령 대중문화의 메카로 여겨지는 할리우드의 경우 유명 대학들이 클러스터를 형성해 할리우드를 위한 대학교육을 성황리에 진행하고 있다. 브랜드 파워가 강한 대학과 풍부한 연구진, 여기에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높은 산업적 이해와 정서가 결합해 대중문화의 산물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학(Entertainment Science)과 문화학(Cultural Studies)을 학문의 궤도에 올려놓았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확대 지속가능한 기반을 대학이 확실하게 구축해 놓은 것이다. 대학은 사회의 요청에 화답하며 존재 가치를 각인시켜 왔다. 우리 대학의 역사는 민주화, 산업화, 세계화의 시대 요청에 화답하며 세상의 길을 넓히려고 부단히 노력한 노정이다. 크게는 시대정신으로부터 작게는 현실방책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한류의 선진성과 확장성에 상응하는 대학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외적 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한류의 주도권도 여전히 미국 일본 유럽 중심의 팬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최근 영국의 권위지 더타임스가 보도한 ‘한류, 한국문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라는 제목의 기사는 당혹 그 자체다. 인용하면 “지금 우리는 모두 K팬이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한류 드라마의 폭발적인 인기는 갑자기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다. 이는 정부가 야심 차게 수십년간 기획해 나온 산물이다”.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닌 것은 맞지만 정부의 야심 찬 기획물이라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참 어렵다. 그동안 K팝의 성공 요인을 거론할 때 거의 이런 틀이다. 이른바 한국의 경제성장을 논의할 때 활용한 개발국가의 설명방식을 그대로 얹혀 놓는 것이다. K대중문화가 어떻게 생산되고 확산되는가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도 없는 진단이다.

이제 막이 오른 K대중문화 시대에 있어 대학은 두 가지 역할을 사회에 펼쳐야 한다. 하나는 한류에 대한 학문적 담론을 주도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콘텐츠 테크놀로지를 구축하는 것이다. 전자는 한류의 미래가 팬덤에 좌지우지되거나 정부 기획 산물과 같은 잘못된 해석이 나오지 않게 하는 일이다. 한류의 정체성과 확장성에 대한 진지한 논제를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자는 콘텐츠와 테크놀로지를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하는 일이다. 한국 대학은 인문학적 콘텐츠와 공학적 테크놀로지라는 뛰어난 두 영역을 지니고 있다. 한국 대학만큼 다양하게 실험할 수 있는 열의를 가지고 있는 사회도 드물다.

K대중문화 시대는 인기만큼 높은 안목과 담론, 그리고 탄탄한 재생산 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대학이 매력 자본으로서의 한류의 가치를 제시하며 콘텐츠와 테크놀로지를 엮어내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 시대 우리 대학에 주어진 중요한 책무의 하나다. K대중문화 시대는 지금부터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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