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골프장처럼 방향·속도·거리 등 표시… “실전 같아요”

[미래교육 대전환 프로젝트 2021] ⑨ VR 체육수업 세종시 솔빛초교 가보니

세종시에 위치한 솔빛초등학교 학생들이 VR스포츠실에서 이뤄진 체육수업에서 스크린에 공을 던지고 있다. 솔빛초등학교 제공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어요.”

지난 25일 만난 세종시 솔빛초등학교 3학년 유찬(가명)이는 학교 축구리그에서 골을 넣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에 동석한 다른 학년 아이들과 교사들이 웃었지만 유찬이는 웃음기 없이 진지한 얼굴이었다. 아이의 표정에서 골을 넣은 순간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솔빛초는 학생회 주관으로 3~6학년 학생들이 팀을 구성해 축구리그를 하고 있다. 학급 대항전이 아닌 학년을 골고루 섞는 방식이어서 5, 6학년이 팀의 주축이 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3학년은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고 주력과 슈팅도 달린다.

형들에 비해 작고 느린 유찬이의 골은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었다. 유찬이는 체육을 전담하는 김명래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학교 ‘가상현실 스포츠실(VR실)’에서 슈팅 연습을 했다. 학교 공간혁신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작은 공간(88㎡)에서 스크린골프장처럼 슈팅 훈련을 할 수 있다. 학생이 공을 차면 공의 방향과 속도, 거리 등이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표시된다. 공의 궤적도 확인할 수 있다. 이곳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유찬이는 지난 21일 학교 리그 경기에 참여했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공이 유찬이 발에 걸렸고 강력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유찬이는 “6학년도 있었는데 자랑스러웠어요. VR실에서 찼을 때 얼마나 세게 나가는지, 어디로 날아가는지 집중하며 연습했어요”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원래 공을 세게 못 차던 아이였는데 속도와 거리 등 수치를 보면서 ‘이렇게 하니까 잘 나오네’라며 아이가 재미있게 연습했다. 실제 경기에서도 골을 넣어 저도 놀랐다”고 했다.

유찬이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 학생은 아니다. 그날의 골도 흘려보내는 일상의 한 장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18년차 베테랑 교사의 생각은 달랐다. 김 교사는 “이런 성공 경험은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동기부여가 된다. 평생 잊지 못하는 기억일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되는구나’라는 일종의 성공 공식을 터득한 것이고 추후 더 큰 성취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며 “본인의 자존감이 올라가면 대인관계가 좋아지는 효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솔빛초는 공간 구성에서 학생들의 눈높이를 감안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공간 혁신’ 사업을 통해 학습 공간과 놀이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미래교육에서 학교는 정해진 교실에서 한 명의 교사가 다수의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을 지양한다. 교사 역시 일종의 퍼실리테이터(토론·진행 촉진자) 역할을 요구받는다.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내적인 깨달음 혹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이다.

기본적으로 VR실 같은 학교 공간에 접목된 에듀테크는 이런 교사를 도와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교구가 될 수 있다. 이런 미래형 체육수업의 초기 모델이 솔빛초 체육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VR실이 생긴 뒤 체육수업은 운동장과 강당, VR실 3곳에서 진행한다. 각각의 공간은 아이들이 배우는 내용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생긴다.

솔빛초등학교 VR스포츠실에 마련된 가상 야구연습 프로그램에서 한 학생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솔빛초등학교 제공

예를 들어 가상으로 양궁 체험학습을 진행할 수도 있다. 스크린에 표시된 표적을 향해 쏘면 활의 궤적과 과녁 어디에 맞혔는지 나타나게 된다. 올림픽이 열려 아이들 사이에서 양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양궁장을 찾지 않아도 학교에서 간접체험이 가능하다. 아직은 축구나 야구, 양궁, 핸드볼 등 일부 종목에 국한돼 있지만 VR 기술과 장비가 고도화되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거의 모든 스포츠를 학교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다른 교과와 연계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학년별로 공부하는 내용을 공 던지기와 접목하는 방식이다. 이 학교에서는 학년별로 배운 내용을 스크린에 퀴즈로 띄우면 학생들이 정답에 공을 던져 맞히는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 수업의 변화는 학생의 변화로 나타났다. 5학년 민정(가명)이가 그랬다. VR실에서 이뤄진 체육수업이 민정이를 조금씩 달라지게 했다. 내성적이었던 민정이는 체육시간이면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다른 아이들과 협력해야 하는 구기활동 시간에는 공을 만지는 것도 꺼리며 “선생님 오늘 저 아파서 못하겠어요”라고 말하던 아이였다.

민정이의 변화는 VR실 체육수업에서 진행된 표현활동에서 처음 목격됐다고 한다. 스크린에 나오는 캐릭터와 똑같은 동작을 하는 수업에서였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정확하게 율동을 하거나 스크린에 표시된 신체 실루엣이나 도형 등을 몸으로 따라하면 점수를 따는 게임이었다.

예를 들어 스크린에 삼각형이 나오면 학생들이 몸을 최대한 삼각형에 가깝게 만들어 점수를 딸 수 있다. 교사들을 놀라게 한 건 민정이의 태도였다. 다른 친구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수줍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친구들은 땀을 뻘뻘 흘리는 민정이를 처음 봤다고 한다. 민정이는 “VR실 체육수업은 생동감 있어서 재미있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도 즐거워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모든 학생이 VR실에서 이뤄지는 체육수업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학생에겐 VR실이 답답할 수 있다. 한 4학년 학생은 “저는 인공지능이랑 (수업·놀이)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강당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부딪치며 직접 노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VR실 같은 공간 그리고 에듀테크는 교육과정을 한층 풍성하게 할 수 있다. 몰입도를 높이는 등 수업을 보완하는 측면에서 충분히 효용가치가 있다”며 “VR을 수업에 제대로 활용하려면 학생들이 답답하지 않도록 공간이 훨씬 커야 하고 기기와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할 필요가 있다.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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