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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어머니와의 식사

요조 가수·작가


부모님과 가까이 살게 됐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던 사이였다가 옆 동네에 살면서 이젠 일주일에 한두 번 보는 사이다. 주로 함께하는 일은 밥을 먹는 일이다. 아침을 함께 먹을 때도, 저녁을 함께 먹을 때도 있다. 요리를 잘하고 또 좋아하는 어머니는 이제 장을 보시면서 1인분을 더 생각하는 일이 당연해졌다. 그리고 잘 길러진 제철 먹거리들을 보면 더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됐다. 엊그제는 일하는 중에 갑자기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어머니의 신나는 용건이 들려왔다. 꽃게가 아주 실하다고. 탕을 끓일 테니 내일 아침에 건너오라고.

음식 냄새가 가득한 집에 들어서는 일은 즐겁고 또 몹시 익숙하다.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무한히 반복했던 풍경이 다시 펼쳐진다. 빠짐없이 온기가 스며있는 음식의 냄새, 어머니의 모자란 손이 되어 요리의 마무리를 돕는 나, 어머니의 요리 하나하나를 극찬하는 아버지 특유의 묘사, TV 소리, 그 식사 자리에 끼고 싶어 연신 두 발로 서서 우리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강아지까지. 그때 우리는 가족이지만 나는 우리가 배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대사를 계속 반복하는 노련하고 행복한 배우.

나는 주어진 밥과 반찬을 맛있게 먹고,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들었던 이야기를 지루한 줄도 모르고 또 경청하며 웃는다. 가끔 몽롱해지기도 한다. 하도 이 순간을 반복하다 보니 내가 지금 스무 살인지, 스물다섯인지 헷갈린다. 그때 어머니가 내게 누룽지를 건네고, 나는 그릇 너머로 거칠고 자글거리는 어머니의 손을 보며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내가 마흔한 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잔잔한 충격 속에 말이 없어진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는 다 먹은 식기를 설거지하며 콧노래를 부른다. 엄마가 따라 부른다. 무슨 노래인지 알 것 같다. 후렴은 나도 같이 부른다. ‘아, 예엣날이여어. 지난 시이절 다시 올 수 없나, 그으나알.’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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