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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그런 남자가 되지 마라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2021년 3월 3일. 마케팅 전문가인 사라 에버라드는 친구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 귀가하던 중 납치됐다. 납치범은 도버 인근에서 사라를 강간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고 연못에 버렸다. 범인이 체포된 건 그로부터 엿새 뒤였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청 소속의 웨인 쿠젠스는 귀가 중이던 사라에게 다가가 “코로나19 규정을 어겼다”며 수갑을 채워 차에 태웠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웨인 쿠젠스가 한 달 전부터 사라를 납치한 클래펌 커먼 일대를 오가며 범행을 계획했음이 밝혀졌다.

사라에 관한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한 이후로 실화에 바탕을 둔 범죄물을 자주 봤다. 반쯤은 의식적이었고, 나머지 반은 예컨대 영화 ‘나를 믿어줘-리사 맥베이 납치 사건’을 보고 나면 ‘이것도 당신 취향일 것 같은데’ 하며 해당 플랫폼에서 끈질기게 추천해 줬기 때문이다. 내가 본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하는 범인들은 자신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당연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누리지 못했을 때 여성을 때리고 강간했다. 혹은 직장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여자가 자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연인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학대하고 죽였다. 좌절하거나 분노한 남성들의 막무가내식 보복은 마치 천부인권을 행사하듯 약하고 만만한 여성과 아이를 상대로 너무도 쉽게 자행됐다.

3월 10일. 무참히 훼손된 사라의 시신이 발견되자 영국 전역은 들끓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은 납득할 수 없는 충고를 대응이랍시고 내놓았다. 필립 앨롯 경찰국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여성들이 자신을 지키려면 늦은 시간에 다니지 말아야 하며, 세상 물정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관은 두 명이 함께 다니는 것이 원칙이므로 경찰관 한 명이 다가오면 다른 동료 경찰은 어디 있는지 물었어야 하며, 제아무리 경찰관이라 하더라도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들면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를 감싸는 듯한 발언들은 ‘가디언’을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최근 한국에 번역된 ‘남성 특권’에서 철학자 케이트 만은 남성이 성폭력이나 여성 혐오적 범죄를 저질렀을 때 오히려 여성 피해자보다 더 공감과 염려를 받는 현상을 일컬어 ‘힘패시(him+sympathy)’라고 명명했다. 아울러 힘패시에는 필연적으로 여성 피해자 비난하기와 여성 피해자 지우기가 동반된다며 이렇게 적었다. “힘패시는 종종 남성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을 근본적으로 왜곡한다. 강간과 같은 범죄들을 단순한 오해와 술이 초래한 해프닝 정도로 전환시키기도 한다. 그들은 남성 가해자를 감싸는 사회구조 덕분에 강간을 실행에 옮길 수 있고, 그 구조 내에서 보호받는다. 심지어 그 구조가 이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10월 12일. 스코틀랜드 경찰청은 ‘그런 남자가 되지 마라(Don’t Be That Guy)’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며 동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에 등장한 남성들은 카메라를 향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여성을 향해 인형처럼 예쁘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길을 걸으며 여성에게 휘파람을 불어본 적이 있나요? 버스 안에서 여성을 뚫어지게 쳐다본 적이 있나요? 혹은 친구에게 ‘저 여자랑 하고 싶어’라고 말한 적이 있나요? 눈앞의 여성과 자고 싶어 계속해서 술을 마시도록 한 적이 있나요? 왜 여성을 칭찬하고도 고맙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이 질문들은 나와 당신이 여성에 대해 이렇다 할 차별적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여성 혐오적 행위를 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일단은 이 점을 인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일상적으로 성희롱, 폭행, 죽임을 당하는 일에 비하면 그런 남자가 되지 않는 것쯤이야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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