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태원준 칼럼] 국가의 책임 vs 개인의 자유


'음식점 총량제' 논란서 보듯
여야 후보 맞붙을 본선에선
큰 정부, 작은 정부 말하는
고전적 논쟁이 재현될 전망

수십년간 제시됐던 선택지가
달라지지 않아 답답하지만
이 선택 또한 유권자의 몫이다

내 삶을 책임지겠다는 후보와
내 삶에 자유를 주겠다는 후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려는가

“정부가 국민의 모든 삶을 책임질 순 없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지난 8월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초선의원 모임에서 강연하다 이런 말을 했다. 태영호 의원이 “여당 후보들은 지속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얼마씩 주겠다고 하는데, 지속가능하려면 국민연금 더 걷고 긴축재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답변하면서 꺼낸 말이었다. “국민의 삶을 국민이 책임져야지, 왜 정부가 책임지나”라는 거친 표현으로 전달돼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비판이 일었다. 결국 그의 실언 목록에 오르고 말았지만, 나는 이 말이 이번 대선의 전선(戰線)을 규정했다고 생각한다.

최 전 원장은 이튿날 발언을 해명하며 덧붙였다. “국가가 책임진다는 말은 국가가 간섭한다는 말이며, 간섭은 언제라도 더 심한 통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이 자율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어려운 계층을 지원해 건강한 공동체를 일궈가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윤석열 홍준표 후보의 출마선언문에도 담겨 있었다.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자유는 정부의 권력에 한계를 그어주는 것입니다.”(윤) “개인과 기업을 옭아매는 부당한 규제와 간섭을 대폭 줄이고 시장의 자유를 확대하겠습니다.”(홍)

최 전 원장 발언이 나왔을 때 여당 측은 “국민의 삶을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국민에게 무슨 비전을 말하려는가”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기본이 안 돼 있다”고 혹평했다. 문재인정부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엊그제 여당 의원들이 현 정부 성과를 평가한 토론회의 타이틀이기도 했다. 이를 넘겨받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경선 연설회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통째로 책임지는 중요한 존재”라고 말하곤 했다. 지난 25일 경기지사직을 사퇴하며 꺼낸 말도 같았다. “5000만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나라의 대표일꾼이 되고자 합니다.”

내 삶을 책임지겠다는 자와 내 삶에 자유를 주겠다는 자. 대장동과 고발사주 같은 논란에 뒤덮여 전선이 불분명한 지금 대선판에서 그나마 찾아낼 수 있는 대척구도는 이것이 아닌가 싶다. 정책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이렇게 상반된 시각은 어김없이 충돌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27일 시장에 가서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언급했다. 전체 음식점 수를 제한해 자영업자들이 과도한 경쟁에 쓰러지지 않게 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굶어 죽을 자유는 자유가 아니듯이 마구 식당을 열어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 선량한 국가에 의한 선량한 규제는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택시처럼 면허제를 취한 업종이 많으니, 상인들이 망하지 않도록 그 삶을 책임진다는 취지에서 꺼내볼 만한 구상이라 여겼을 듯하다. 야당 후보들은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영업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반헌법적 발상이다.”(홍) “이런 인식은 경제를 간섭과 통제의 늪으로 몰아넣을 것이다.”(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의 삶을 막무가내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다.”(원희룡)

같은 사안을 한쪽은 책임지는 행동이라 여기고, 다른 쪽은 간섭하는 행위라고 본다. 좁혀질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 커다란 간극은 곳곳에서 발견돼 왔다. 기본소득부터 기본대출까지 이재명 후보의 기본 시리즈 어젠다를 야당 후보들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일축했다.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정책도 규제를 더 강화해 불로소득을 뿌리 뽑겠다는 공약과 종합부동산세를 아예 폐지할 정도로 규제를 풀어버리겠다는 약속이 엇갈려 제시돼 있다. 지금까지는 당내 경선이 무대였기에 아직 본격적인 논쟁은 벌어지지 않았는데, 본선이 시작되면 유권자를 설득하는 양측 논리는 결국 이 지점에서 맞붙게 될 듯하다. 우리에게 질문이 던져질 것이다. 내 삶을 책임지는 정부를 원하는가, 내 삶에 간섭하지 않는 정부를 원하는가?

이것은 아주 고전적인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이다. 보수와 진보로 진영이 나뉜 한국 정치의 유권자들이 오래전부터 받아들었던 선택지와 다르지 않다. 어떤 때는 성장과 분배, 어떤 때는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중에 고르라던 것이 이번에는 국가의 책임과 개인의 자유로 표현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다. 한국도 이제 선진국인데 수십 년 된 질문지를 여전히 들이미는 정치에 답답함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거라도 잘 선택해야 내가 원하는 삶에 근접해갈 것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려는가.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