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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죽음의 격

이흥우 논설위원


모든 생은 유한하다.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신의 섭리다. 사람도 죽는다. 그러나 죽음 하나하나의 무게와 의미는 고인의 삶의 궤적에 따라 다르다. 신분제도가 엄격했던 과거엔 천자가 죽으면 붕(崩), 왕이나 제후가 죽으면 훙(薨), 대부가 죽으면 졸(卒), 보통사람의 경우 사(死)라 했다. 같은 죽음이라도 대하는 격이 달랐다. 그래서 무덤 또한 신분에 따라 능(陵), 원(園), 묘(墓)로 구분했다.

죽음을 일컫는 단어는 현대에서 더욱 다양해졌다. 또 종교마다 달라 기독교에선 소천, 가톨릭에선 선종, 불교에선 입적이라 한다. 신분제가 사라진 이후 붕, 훙은 더 이상 쓰지 않는 사어가 됐지만 이를 대신하는 단어가 없는 건 아니다. 일반인이 숨졌을 때 사망, 타계, 별세 등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전직 대통령이나 사회에 현저한 업적을 남긴 이의 경우 서거(逝去)라는 높임말로 고인을 추모한다. 신분제가 사라진 현대에도 죽음의 격이 존재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지난 주말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됐다. 국가장이 엄수되는 순간에도 영결식장 부근에서 국가장에 반대하는 시위가 있었다. 명색이 국가장이고, 국가장이면 으레 참석해야 할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계 인사 여럿이 이런저런 핑계로 불참했다. 첫 국가장으로 치러진 김영삼 전 대통령 영결식과는 대조적이다. 노 전 대통령 죽음을 대하는 국민 정서가 그때와는 사뭇 다른 탓일 게다.

앞서 그의 죽음을 전한 언론 보도 행태도 달랐다. ‘서거’로 예우한 언론이 있는가 하면 ‘별세’ 또는 ‘타계’로 중립적 견지에서 부고를 전한 언론, ‘사망’이란 지극히 일반적 표현으로 그의 삶을 평가한 언론도 있다. 영결식이 끝났으나 그는 아직 영면에 들지 못했다. 묫자리가 마련되지 않아서다. 유족들은 파주 통일동산 인근에 고인을 모시고 싶어하나 이 지역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대하면서 죽음의 격은 ‘무엇이 됐느냐’가 아닌 ‘어떻게 살았느냐’가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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