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전체

[가리사니] 서초동에서 카페를 한다는 것

양민철 사회부 기자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소위 ‘핫플레이스’와는 거리가 먼 곳이다. 오가는 사람이라곤 어두운 옷차림으로 죄 지은 사람을 잡으러 다니거나, 잡힌 사람을 돕거나, 이들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뿐이다. 장사가 잘될 위치는 아니라는 뜻이다. 5년 전 젊은 남자 사장이 나간 자리에 50대 후반 여주인이 새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딴에는 걱정도 했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도 당황하던 주인 곁에는 바리스타 학원에서 보낸 ‘개업 축하’ 화환이 놓여 있었다.

수년 만에 다시 찾은 카페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마술쇼가 펼쳐지던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처럼 성황이었다. 점심 손님이 빠져나가고 한산해지자 주인이 말을 건넸다. “그동안 온갖 파란만장한 일을 다 봤어요.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이 바뀌고 법무부 장관 지지 시위가 열리고 검찰총장이 쫓겨나고….”

주인은 “정치는 정말 요만큼도 관심 없었던 사람이었다”고 했다. 단순히 교회가 가까워서, 그렇다고 또 너무 가깝지는 않아서 고른 자리였다. 개업 초기엔 아침 7시에 문을 열었다. 출근하면서 커피를 사는 손님 한두 명이 고마웠다. 구석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여는 기자들도 있었다. “이상하게 이 동네는 어디 갈 곳이 없잖아요. 될 수 있으면 문을 일찍 열자 싶었죠.”

장사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방송국 차량들이 검찰청사를 새까맣게 둘러쌌다. 뉴스를 보고서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나왔다는 걸 알았다.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가게로 밀려들어왔다. 커피는 안 시키고 태극기부터 들이밀었다고 한다. “제가 좀 바보같이 보였나 봐요. 막 설득을 시키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정치도 못할 거면서 왜 대통령을 했느냐,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뭐라 그랬죠. 아마 자기 편을 만들어서 여기를 아지트로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자기 말이 옳다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찾아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자들이 시위를 가장 많이 하던 때로 기억한다. 커피만 190만원어치 판 날도 있었다. 현수막을 든 사람들은 작전 짜듯 대본을 적고 구호를 만들었다. “날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왜 이렇게 하시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들이 참다 참다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나왔다는 거예요. 뭘 못 참겠다는 거냐고 했더니 한 명이 그러더라고요. ‘조국이 잘 생겼어요’라고.”

서초동은 가만히 앉아 커피만 팔 수는 없는 곳이었다. 이 사람들은 이 말이 맞지 않느냐고, 저 사람들은 저 말이 맞지 않느냐고 했다. “내가 생각할 땐 둘 다 말이 안 되는 소리인데 그걸 계속 옳다고 얘기를 하니까, 안 되겠다 좀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죠.” 영화 바그다드 카페와 같은 화합과 감동의 드라마는 없었다. “자기하고 생각이 다르다고 무슨 죄인 취급하고… ‘이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였으면 좋겠다’고 말해도 씨도 안 먹히더라고요.”

어느 선거철에는 ‘○번’을 찍어 달라며 찾아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다른 후보를 찍을 것이라며 강하게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도 여기서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았어요. 옛날에는 관심도 없었고 투표도 잘 안 했어요. 투표장에 가지도 않았었는데 요즘에는 열심히 가서 찍고 와요.”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는 그의 생활도 끝을 향해 가는 듯하다. 주인은 최근 가게를 내놨다. 고향에 있는 노부모를 모시러 간다고 했다. 40년 전 ‘5월의 광주’에서 총소리를 들으며 김밥을 싸 학생들에게 건넸다던 20대 시절도, 검찰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지금도 그가 알고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한다. 우는 아이 달래주듯 살다가 이렇게 됐다. “그래도 저는 아닌 건 아닌 거 같아요.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해야지 우리 편이라고 무조건 옳은 게 어디 있어요? 이쪽 저쪽 다 마찬가지예요.” 서초동 카페 5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양민철 사회부 기자 liste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