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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인기 꼴찌 노태우, 역주행하나

천지우 정치부 차장


한국갤럽이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해방 이후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에 대해 설문조사했을 때 꼴찌는 노태우 대통령(0.1%)이었다. 재임 기간이 짧은 윤보선·최규하, 당시 대통령이던 박근혜는 제외된 조사였다. 2019년 시사IN의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 조사에서는 윤보선과 노태우가 0.2%로 공동 최하위를 기록했다. 역대 대통령 중 노태우가 가장 인기 없는 축이었다는 얘기다. ‘물태우’ 이미지 때문인지 쿠데타 동지이면서 캐릭터가 센 전두환에게 밀렸었다.

최근 노태우가 세상을 떠나자 “업적에 비해 과소평가됐다” “전두환과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5·18 책임에 대해 아들이 대신 사과했으니 전두환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전두환이 갑자기 참회한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조사하면 노태우 순위가 꽤 오를 것으로 보인다. 노태우 빈소에 조문을 온 노무현 사위 곽상언씨도 “노무현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할 때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유명 인사가 죽고 나면 그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관대해지는 측면도 있다. 한국이 유독 그런 듯하다. 2015년 김영삼이 별세했을 때는 추모하고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정희 이후 모든 대통령과 직간접적 관계를 맺은, 한국 정계의 구루(권위자)라 할 수 있다. 그는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서 “대통령 면면과 인간 됨됨이, 실무 능력, 그들의 흥망성쇠를 나처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라 해도 그의 인물평은 묵직하고 흥미롭다. 그는 누구를 칭찬하고 누구를 혹평했을까. 우선 김영삼에 대한 평가가 가장 박하다. “박정희 콤플렉스에 갇혀 박정희의 유령과 싸우다 끝내 패배했다” “김영삼과 가까이하지 않았던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적었다. 이명박과 박근혜, 문재인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이명박은 ‘수단·방법 안 가리며 살아왔고 분식회계나 일삼던 사람’이라고 깎아내렸다. 또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가 태어날 수 있도록 김종인 자신이 도왔던 것을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할 일’로 표현할 정도였다.

노무현에 대해선 솔직하고 소탈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겠다는 기대도 가져봤지만, 한순간에 세상을 등져 안타까웠다고 했다. 김대중과 전두환, 노태우도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김대중의 정치적 노련함에 경탄했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은 점도 호평했다. 전두환에 대해선 ‘상황 판단이 빠르고 한번 결정한 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일관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노태우에 관해선 “돌다리를 거듭 두드려보고도 건너지 않고 걱정하는 사람으로, 전두환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집무실에 공약 500개 차트를 걸어놓고 체크하던 우직함이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고도 했다.

물론 가치를 매기는 부분이 저마다 달라 김종인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여러 다양한 견해들이 뒤섞이고 쌓여 ‘역사의 평가’가 될 테고, 그건 또 현재와 맞물려 끊임없이 달라질 것이다. 이제 ‘1노 3김’ 시대가 완전히 끝났고, 넉 달 뒤면 새 대통령을 선출한다. 대선 후보들에 대한 기대보다 실망이 훨씬 커 보이는 현 상황이 안타깝다. 누가 되든 긍정적인 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르니까.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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