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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정치 ‘쇼’로 끝난 임성근 탄핵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


헌법재판소 출범 초기 부장판사 M씨는 차담 중에 갑자기 왼편 서랍을 열더니 내게 몇 장의 문건을 건넸다. 펼쳐보니 시뻘겋게 난자당한, 한마디로 상사로부터 묵사발당한 듯한 판결문 초안이었다. 자신은 젊은 시절 선배 법관으로부터 판결문은 수필이 아니라며 혼나면서 판결문 작성 요령을 배웠다고 했다. 초토화됐던 그 초안을 지금도 고이 간직하며 법관으로서 자세를 가다듬는다고도 했다.

지난주 임성근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선고가 있었다. 잠시 잊혀졌던 그는 이미 우리에게 재판농단 의혹 사건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지난 2월 초 국회가 탄핵소추 사유로 적시한 것은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칼럼 관련 판결문 작성 개입, 유명 야구선수 도박죄 사건 공판절차 회부 관여, 민변 변호사들의 쌍용차 집회 재판의 양형이유 수정 지시 등 행위의 위헌·위법성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모두 “개입, 관여, 지시”라는 권위적 용어로 포장됐지만 후배 법관들에게 자연스러운 ‘조언’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그에게 형사재판 1·2심은 모두 조언, 의견 제시, 충고 등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판단해 무죄 선고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1심 판결문에 적시된 ‘위헌적 재판 관여 행위’라는 표현을 근거로 발의된 탄핵소추안은 정치적 의도가 충분히 엿보였던 일이었다. 탄핵소추 의결 당시는 김경수, 조국·정경심 재판과 윤석열 직무정지명령·징계처분 재판 등 굵직한 정치적 사건이 진행되던 중이었고 그 재판 결과에 사활을 걸고 있던 정부·여당으로서는 법관에 대한 ‘군기잡기’가 절실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탄핵심판의 이익’이 없다는 헌재의 각하 결정에 대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는 판단에 큰 의미를 두며 탄핵 절차 입법 보완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탄핵소추 발의를 주도했던 이탄희 의원은 “헌재가 법기술자적 판단에 머무르고 있다”며 연일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조차 탄핵소추 자체가 무리한 것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송 대표가 말한 ‘중대한 헌법 위반’도 소수의견에서 언급한 것일 뿐 법정의견(다수의견)에서는 이에 관한 어떠한 판단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의 답변은 부적절했다.

탄핵 결정은 각하 5명, 인용 3명, 심판절차종료의견 1명으로 나뉘었다. 법정의견은 법리적 판단을 한 반면, 인용의견은 정치적 고려를 했다. 법정의견의 핵심은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탄핵 결정 선고 당시까지 반드시 피청구인이 해당 공직을 보유할 것이 요구되고 임기 만료로 인한 퇴직인 경우에는 탄핵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헌재법 제54조 제2항(5년간 공직 취임 제한) 및 제53조 제2항(선고 전 파면자는 ‘기각’ 결정)을 임기 만료 퇴직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유추해석금지원칙에 반한다. 셋째, ‘중대한 헌법 위반 여부’ 판단에 대해 본안 판단을 인정하는 것은 현행 헌법 및 헌재법 체계상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 인용의견은 ‘헌법적 해명의 필요성’을 긍정한 후 “중대한 헌법 위반에 해당해 파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 개입 여부에 대한 구체적 평가는 사실심 판단 사안으로, 형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직권남용의 ‘유죄’를 전제로 탄핵 인용 논리를 구성한 것은 탄핵심판 법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임 전 부장판사가 재판 개입 의도로 관여했다면 사법정의를 거스른 것이어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대법관을 꿈꿨던 그는 다른 이념 노선을 걸어온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이후 법관 재임명 신청을 포기하고 2월 말 임기 만료를 기다리다 건강상 이유로 앞당겨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시 “그러면 탄핵 못하잖아!”라는 대법원장 녹취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지만, 탄핵 사건 선고 이후 대법원장의 사과 소식은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다.

임성근 탄핵소추는 정치 ‘쇼’에 그쳤다. 임성근 탄핵소추가 전반전이었다면 후반전은 김 대법원장 탄핵소추 발의의 장이 돼야 한다. 부정의(不正義)한 사법 개혁은 권력에 기생하는 법관을 탄생시킨다. 우리가 바라는 법관상(法官像)은 탈(脫)정치권력으로서 ‘법원의 독립’과 정치권력과의 투쟁 산물인 ‘법관의 독립’을 지향하는 법관이다. 탄핵심판 제도가 사법부 독립을 깨뜨리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신봉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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