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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구 칼럼] 다시 돌아보는 ‘물태우’


노태우 전 대통령 장례 내내
쏟아진 엇갈린 평가들

쿠데타 원죄 덮을 순 없지만
'물태우'의 소통 리더십 문민
정부로의 과도기에 제 역할 해

비호감 선거 될 것이라는 이번
대선, 강력한 공약뿐 아니라
국민 통합 메시지도 필요해

5공 정권과 6월 항쟁을 경험한 세대 상당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평가에 공감했을 것이다. 이 후보는 빈소를 찾은 뒤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 그러나 결코 그 빛의 크기가 그늘을 덮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이 후보의 말처럼 고인이 신군부의 2인자로 헌정질서를 유린한 쿠데타를 주도하고 민주화 운동을 짓누르며 숱한 희생을 초래한 것은 역사 앞에 씻을 수 없을 죄다. 88올림픽 성공, 북방정책과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을 통해 탈냉전 시대 외교정책 선도, 200만호 주택 건설과 경부고속철 및 인천공항 착공 등의 업적으로도 그 원죄를 덮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의외였던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전한 평가였다. 곽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 평가를 하셨다. 그때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해 매우 높게 평가하셨다”고 소개해 눈길을 모았다.

노태우 정권 당시 요직을 맡았던 인사 175명이 2011년 펴낸 ‘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에는 ‘물태우’란 별명을 가졌던 대통령의 리더십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내용들이 담겼다.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노재봉 전 총리는 ‘물 대통령’이란 얘기가 어느 여성 작가의 글로 회자되기 시작할 때 노 전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일화를 적었다. 노 전 총리가 “전혀 기분 나빠 하실 일이 아닌 듯하다. 그게 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라고 진언하자 대통령이 미소로 돌아섰다고 회고했다. 노 전 총리는 “나는 한 사람의 천재보다 여러 사람이 모은 생각을 더 중시한다” “수석들은 나의 분신”이라는 생전 언급을 소개하며 그를 누구보다 인내심이 많았고 무슨 얘기든지 경청하는 스타일이었다고 썼다.

박희태 당시 여당 대변인은 각계 요구가 분출해 연일 시위가 벌어지던 시국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어느 청와대 당정 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이 강경책을 써야 한다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간을 갖고 더 설득할 것을 지시했던 사실을 회고했다. 그는 제왕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하에서 스스로 권력을 자제하며 기다렸다는 점을 물대통령 예찬의 이유라고 기록했다.

노태우정부의 일원들이 내놓은 평가여서 다소간의 예우가 섞여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넘어가던 과도기에 강단 있는 통치가 아니라 소통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들도 많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어느 식사자리에서 “나는 이름부터 ‘큰 바보(泰愚)’이니 당신들이 의견을 많이 내달라”는 우스갯소리를 했고 실제로 어느 정권보다 자주 회의를 했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대통령의 민심 소통 창구도 1990년 6월 29일 시작됐으니 물태우의 소통 리더십이 그저 공치사만은 아닐 것이다.

이번 대선은 유례없는 ‘비호감 선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과 비호감도가 동시에 높기 때문이다. 이재명 후보는 소신이 뚜렷하고 정책 결정의 과단성이나 추진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정책 방향이 맞지 않는다고 경제부총리마저 몰아붙이고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라는 주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려는 모습은 반대파에게 독단적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범죄가 있다면 여야,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칼날을 들이대는 검사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비판자들의 눈에는 막무가내식 칼춤으로 비치고, 우직한 검찰주의는 종합예술이라는 정치에선 약점으로 인식된다. 홍준표 의원도 독설로 이름난 저격수 출신이어서 호불호가 엇갈린다.

비호감도가 높은 후보들이 각광받는 것은 시대 상황 때문일 것이다. 진영 갈등이 거세고, 사생결단식 전쟁을 연일 벌이니 부드럽고 합리적인 소통형이 설 자리가 없는 게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들에게 물태우의 리더십을 한 번 되짚어보라는 건 시대착오적이고 어쭙잖은 주문이다. 하지만 유력한 ‘물후보’가 등장한다면 싸우느라 피폐해진 양 진영이 한숨이나마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상식도 논리도 사라진 진영 싸움에 걱정이 태산인 중간층도 통합의 꿈을 다시 꿀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타 진영에까지 닿을 수 있는 소통과 통합의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게 이번 대선을 지켜보는 국민의 바람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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