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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손편지 벌칙

이원하 시인


운동이나 게임, 각종 내기에서 패배하면 벌칙으로 밥이나 술을 산다. 이마에 딱밤을 맞기도 한다. 이런 흔한 벌칙은 이제 시시하지 않은가. 색다른 벌칙이 필요하다. 벌칙이라고 해서 반드시 패자가 손해를 입거나 괴로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 난 승자와 패자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감동적이어서 오래도록 가슴에 남기를 바란다. 벌칙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낭만적인 벌칙을 시인들의 배드민턴 경기에서 발견했다.

시인 세 명은 체육관에 모여 배드민턴을 쳤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치열한 경기였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뒤풀이 식사도 예정돼 있었다. 나는 해외에 있느라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그들의 경기를 보아야 했다. 한 시인은 편안한 옷이 없어 잠옷 바지를 입고 경기에 임했으며, 다른 한 시인은 운동하기에 불편한 단화를 신고 경기에 임했다. 모든 부분이 엉성했지만 그래도 나름 해설자 역할까지 있는 경기였다. 한 시간 뒤 패자가 결정됐다. 패자에게 내려진 벌칙은 밥값을 계산하는 게 아니었다. 다음 경기가 열리는 날까지 승자에게 전해줄 손편지를 써오는 것이었다.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좋은 벌칙이었다.

나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벌칙이 탐나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경기에 끼워 달라고 부탁했다. 나에게 손편지는 한 끼의 건강한 식사만큼이나 소중하다. 옛날에 시인들과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을 때도 손편지를 주고받자는 제안을 했었다. 그 편지를 모아 문예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서로에게 편지를 써주던 기억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기억보다도, 반짝거리는 바다를 바라보았던 기억보다도 머릿속에 깊이 남아 있다. 전자기기가 발달하면서 이런 낭만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길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릴 일도, 새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을 일도, 짝사랑하는 상대의 소식을 밤하늘에 대고 물어볼 일도 없다. 낭만이 사라지지 않도록 사람들은 종종 손편지를 써야 한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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