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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사랑의 대상이 사랑의 관계와는 무관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불행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다고 느끼거나 보거나 알 때, 사랑하는 사람은 그에 대해 격렬한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누군가를 절실히 사랑하는 시절, 우리는 때로 묘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상대방이 나와 무관한 일에서 느끼는 아픔에 대해 이상한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다. 가령 상대방이 취업에 실패하거나, 가족의 누군가가 아프거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나와 무관하게’ 자신의 아픔과 고통에 빠져든다. 그럴 때 우리는 상대방을 깊이 연민하면서도 동시에 ‘그 사람이 아프다’. 즉, 그 사람이 나와 무관한 아픔에 빠져든 그 사실이 아프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누구나 겪을 법한 그런 사랑의 순간에 우리는 상대와의 ‘거리’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과 강렬하게 동일시되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만, 이런 순간 그런 ‘완전한 동일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곧 너이고, 너는 곧 나다. 나의 아픔은 너의 아픔이고, 너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다. 나의 꿈은 너의 꿈이고, 너의 희망은 나의 희망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되길 바라지만 완전하게 같아지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상대가 ‘자기만의 이유’로 고통스러워할 때 나는 상대와 다른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많은 사랑이 그런 거리감에서 어색함을 느끼다가 무너지기도 한다. 한 명이 자기만의 고통에 고도로 몰입할 때, 상대방은 그에 대해 도움을 주고 싶지만 자기 자신이 무력하다고 느낀다. 특히 그 고통이 깊어질수록 상대와의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가 자신의 고통에 깊이 빠져들 때 우리의 사랑, 우리의 관계 자체는 그에게서 밀려나 후순위가 된다. 그러나 인생에 저마다의 고통, 어려움, 힘겨움이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상대를 사랑하더라도 자기 인생에 일어난 고통에 몰두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계속 그 사랑만을 바라보며 그 사랑 속에만 있을 수는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둘인 동시에 각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각자 하나’이기도 하다. 그 각자의 삶에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봐주지 않음에 아쉬울 수는 있겠지만 그럴수록 곁에서 가만히 거리를 두고 단지 매만져줄 필요가 있다.

롤랑 바르트는 바로 그런 차원에서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그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동시에 나와 그가 개별의 사람이고, 완전히 동일시될 수는 없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를 통해 우리는 ‘아주 다정하면서도 통제된, 애정이 넘쳐흐르면서도 예의바른’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부드러운’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때로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깊이 동일시되어 자식과의 분리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런 자식도 자기만의 사랑, 꿈, 고통을 알아갈 것이고, 부모가 모르는 비밀과 독립된 삶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역시 우리는 사랑에서 필요한 거리감을 쌓는 훈련을 해야 할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되 당신을 압박하지 않고, 당신만의 고통과 삶을 허락하면서, 우리는 단단한 거리감 속에서 당신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나가야 한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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