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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먹는 낙태약, 성급한 허가 안 된다


먹는 인공 임신중절약, 이른바 낙태약 허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한 국내 제약사가 지난 7월 수입 허가를 신청한 ‘미프지미소’에 대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심사 기한이 오는 11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미프지미소가 허가된다면 국내 처음으로 ‘약물 낙태’가 가능해진다.

최근 열린 식약처 국정감사에선 이 약의 승인 여부가 정치 쟁점화됐다. 여당 일각과 여성인권단체는 빠른 허가를 압박했고 야당과 산부인과 의사들은 신중한 검토를 주문했다. 개신교와 가톨릭 등 종교계는 ‘태아 살해약’이라며 낙태약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식약처가 제약사 측에 추가로 자료 보완을 요청해 일단 심사 기한은 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허가 여부에 따라 2019년 4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전후 거세게 일었던 낙태 찬반 논쟁이 재연될 수 있다.

낙태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휘발성이 강한 이슈다. 더구나 약물로 뱃속 생명을 죽이는 행위는 임신부의 건강은 물론 법적, 생명윤리적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일반 신약 심사처럼 시간이나 외부 압박에 쫓겨 성급하게 결정돼선 안 된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준비 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선 법적 관점에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 공백 상황에서 낙태약 허가가 이뤄지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말까지 해당 형법 조항과 모자보건법 등 관련 법규를 개정토록 유예기간을 줬지만 국회와 정부의 책임 방기로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낙태약이 허가돼 임신부가 산부인과 의사에게 해당 약 처방을 요청할 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연취현 변호사는 최근 한 인터넷언론 기고에서 “낙태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입법을 기다리지 않고 낙태약을 먼저 허가하는 것은 의사와 약사가 범죄를 저지르도록 방조하는 행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식약처는 의료진을 범법자로 만드는 우를 범해선 안 될 것이다.

또 하나, 전문가인 산부인과 의사들은 시일이 걸리더라도 ‘가교 임상시험’(해외개발 신약의 국내 도입 시 심사 과정에서 국내 임상시험을 진행해 안전성·유효성을 검증하는 절차)을 거쳐야 하고 산부인과 병·의원의 관리하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미프지미소는 자궁 내 착상된 태아를 떨어뜨리는 성분 1알과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된 태아를 밖으로 배출시키는 성분 4알을 1~2일 간격으로 먹도록 한 패키지 약이다. 특히 두 번째 성분의 약은 현재 소화기 궤양 치료용으로만 식약처 허가를 받은 상태로, 강력한 자궁 수축을 일으키는 부작용 때문에 임신부에게는 금기로 돼 있다. 자궁 파열과 출혈 과다에 따른 자궁적출, 자궁외 임신 시 복강 출혈, 빈혈, 태아 기형 등이 생길 수 있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낙태약의 신속 허가를 원하는 이들은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서 이미 쓰이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용 지침이 나와 있는 만큼 가교 임상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처방 주체가 될 산부인과 개원의는 물론 대학병원 교수들도 한목소리로 가교 임상시험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낙태약 도입이 코로나19 같은 급성 감염병을 막는 백신처럼 시간을 다투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는 낙태약이다. 앞으로 낙태 이슈에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만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게 맞는다.

아울러 낙태약 허용 시 우려되는 남성의 무분별한 낙태 강요, 생명경시 풍조 확산 등 여러 사회적 부작용과 세태 변화에도 대비해야 한다. 의학적 심사 요건이 충족돼 낙태약이 허가되더라도 그 시점에 맞춰 보건복지부나 경찰청 등 관련 부처의 대책이 함께 나와야 할 것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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