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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세 팀의 老감독 “1승? 1세트 왔듯 언젠간 올 것”

여자프로배구 막내 페퍼저축은행 사령탑 김형실 인터뷰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이 4일 경기도 수원 기흥구의 선수단 숙소 체육관에서 배구공을 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4일 오후 1시 수원실내체육관. 70세 노감독은 네모난 배구코트를 빙빙 돌며 쉴 새 없이 선수들을 향해 외쳤다. “멀리 때려!” “민경아~” “와 잘했어” “다시!” “라스트, 라스트! 마지막 하나만 더 가자!”

페퍼저축은행 김형실 감독은 여자배구 최강 현대건설과 1라운드 경기를 하루 앞두고 선수들과 훈련에 매진했다. 그는 “계속 볼을 만져야 선수들과 호흡할 수 있다. 멀리서 팔짱만 끼면 안 된다”며 코트 안팎에서 볼을 건네고 박수쳤다. 그의 스마트폰에 찍힌 걸음 수는 이미 1만보를 넘었다.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이 스파이크를 내리꽂은 뒤 그에게 달려가 양손으로 손가락하트를 그리자 김 감독도 엄지를 척 세웠다.

김 감독은 한국 여자배구의 산증인이다. 1981년 여자배구 대표팀 코치로 지도자 커리어를 쌓았고, 2005년 KT&G(현 KGC인삼공사) 감독으로 V리그 원년 우승을 차지했다. 2012 런던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으로 36년 만에 4강 신화를 썼다.

그가 올 시즌 신생팀 페퍼저축은행 사령탑을 맡았다. 역대 최고령 감독이자최초 70대 감독이다. 5개월 만에 급히 창단한 페퍼저축은행은 리그 개막 5일 전에야 선수 전원이 모였다. 그만큼 연습시간이 부족하다. 기존 6개팀의 보호선수 9명을 제외하고 선수를 데려와야 해, 전력도 열세다. 김 감독은 기초가 튼튼한 집을 짓겠다며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유망주 위주로 팀을 꾸렸다. 그렇게 만 20.4세의 젊은 팀이 탄생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배구에 쏟았지만 그는 계속 배운다. 올 시즌에는 어린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들의 단어를 배우고 걸그룹 노래도 듣는다고 했다. 최근에 배운 말을 묻자 ‘찐친’(진짜 친구)이라고 답했다. “나는 ‘슈꼰’이야”라고도 했다. ‘슈퍼 꼰대’의 줄임말이다. 지난달 개막 직전 미디어데이에서 주장 이한비가 김 감독을 이렇게 불렀다. 20대 선수의 재기발랄함은 김 감독이 권위적이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 2일 흥국생명에 1대 3으로 패했을 땐 스스로 잘못한 게 없는지 반추했다. “제가 ‘흥국은 서브로 공략해야 한다’고 서브를 집중 연습시켰는데, 부담이 됐던지 대량 (서브) 범실이 나왔어요. ‘경험이 적고 어린 선수들이니 주문도 신중히 해야겠구나’ 했어요. 자기들도 한번 이겨보려고 신경을 쓴 거니까.”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이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선수들의 훈련을 지도하는 모습.

페퍼저축은행은 개막 후 4연패를 했지만, 끈질기게 상대를 괴롭히며 쉽게 지지 않는 모습에 외려 승리팀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이면에는 김 감독의 리더십이 있다. 선수들은 시합 때 실수를 하면 “미안” 대신에 “다시”라고 말한다. “미안하다”로 선수들이 의기소침해지는 걸 막고 ‘다시 잘해보자’는 의미다. 김 감독은 “야인생활을 할 때 고민한 것들을 전부 적용하고 있다”며 “내가 가진 배구의 모든 것을 손녀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기초, 즉 수비를 중시한다. 2시간30분 내내 수비 연습만 한 적도 있다. 선수들이 질릴 정도다. 김 감독은 “징글징글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리시브는 모든 플레이의 시작이다. ‘세터 놀음’이라는 현대 배구에서도 리시브가 흔들리면 세터에게 공이 가지 않는다. 상대편이 날리는 스파이크의 위력과 회전을 죽이는 리시브가 있어야만, 세터의 좋은 토스와 윙스파이커의 강한 공격으로 연결된다.

기초에는 ‘인성’도 포함된다. 그는 감독인 동시에 좋은 인생 선배가 되려 한다.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도 인성 좋은 선수를 찾았다. 그게 장기적으로 좋은 팀과 선수를 만드는 길임을 오랜 지도자 생활로 체득했다.

페퍼저축은행의 첫 승은 언제 올까. 배구계는 오는 9일 IBK기업은행과 경기에 주목한다. IBK기업은행 역시 4연패로 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인 탓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IBK기업은행도 노련한 선수가 많다. 우리는 아직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고 밥그릇(경험) 숫자가 적으니까 1승을 장담할 순 없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늘 그렇듯 첫 승보다 1점을 강조했다. “매 시합 때 출정 명령을 내려요. ‘1호, 자신감 있는 플레이. 2호, 의식적인 플레이. 3호, 후회 없는 플레이.’ 이렇게. 1승을 해야 한다고 강박을 주기보다 1점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25점이 아니라. 그러면 언젠가는 와요. 1세트가 왔듯이 1승도 곧 올 거예요.”

수원=글·사진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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