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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밥 한술 먹이듯, 머리 쓰다듬듯 … 수천 수만 ‘모정의 붓질’

(22) ‘첫 재불 여성 화가’ 이성자

이성자는 이혼 후 자식들과 생이별을 감내하며 프랑스에 유학했다. 그는 형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붓질로 풀어내며 고유한 추상 세계인 대지 연작을 열었다. 사진은 대지 연작의 하나인 ‘천년의 고가’, 1961년, 캔버스에 유채, 196×129.5㎝.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건희컬렉션을 소개하며 나혜석 백남순 천경자에 대해 썼다. 한 명의 여성 작가를 더 쓰려고 한다. 이성자(1918∼2009). 첫 재불 여성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살을 더 붙이면 해방 이후 전업 작가로 유럽에 정착한 첫 세대로 평가된다.

미술사의 왕관을 쓰게 된 데는 개인사적 아픔이 있다.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것은 6·25전쟁 중인 1951년이다. 당시 33세, 사내아이 셋을 둔 엄마였다. 전통에 순응적이었다면 넘어갔을 남편의 외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이혼을 택했다. “‘슬픈 기억과 절망을 담고 있는 내장까지도 태평양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심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고 이성자는 술회했다. 하늘처럼 의지했던 아버지의 죽음, 결혼 생활의 파경, 자식들과 생이별을 딛고 이국땅에 내린 그를 기다린 신세계는 예술이었다.

이성자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군수를 지낸 부잣집 딸이었다. 당찬 그는 단식 투쟁 끝에 가정학을 공부한다는 조건으로 일본 도쿄 짓센여자대학으로 유학했다. 38년 귀국해 집안이 정해준 짝인 외과의사 신태범과 결혼했다. 결과적으로 파경에 이르렀고 더 멀리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파리행을 택했다. 파리에선 일본에서 배운 걸 살려 의상디자인학교에 다녔다.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간파한 스승의 권유로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해 순수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폴 고갱 등이 거쳐 간 이곳에서 당대 프랑스를 휩쓸던 새 미술을 수혈받으며 구상에서 추상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프랑스에선 당시 추상화 경향인 앵포르멜이 유행했다.


이성자만의 고유한 형식이 느껴지는 시기는 60년대부터다. 그는 에너지 넘치던 40대에 짧고 가는 선을 캔버스 위에 켜켜이 쌓으며 독자적인 추상화의 세계를 열었다. 돗자리를 직조하듯, 모내기를 하듯, 땅을 가꾸듯 붓질하는 이 시기의 작품을 미술평론가 심은록은 대지시대로 명명한다.

“붓질을 한 번 하면서 이건 우리 아이들 밥 한술 더 떡 먹이는 것이고 또다시 붓질 한 번 더 하면서 이건 우리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라고 여기며 그렸다.”

이성자는 형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켜켜이 눌러 내리듯 붓질을 했다. 그리움이 깊어질수록 붓질이 쌓여 이 시기에 선보인 회화는 마티에르가 두껍다. 이성자는 “두껍게 칠한 것이 아니라 땅을 깊이 가꾼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자의 작품 세계는 프랑스에서 인정을 받아 62년 샤르팡티에 갤러리가 기획한 단체전인 ‘에콜 드 파리’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공공미술 작품 요청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돈을 만지게 됐고 63년 프랑스 남부 투레트에 땅을 사서 작업실을 마련했다. 파리 몽프라나스의 다락방을 작업실로 쓰며 미래의 불안과 싸운 지 10여년 만이었다.

65년 한국을 방문했다. 설움에 젖어 떠난 지 15년 만의 귀환이었다.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금의환향’ ‘충격적인 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당시 반도화랑 직원으로서 전시회를 본 박명자 갤러리현대 회장은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권유로 전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구상미술만 보다가 추상미술 세계를 접한 감동이 컸다. 이후 전통 한국화에서 벗어나 현대미술 작가의 전시를 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귀국전에 대한 소문은 훗날 리움 관장이 될 홍라희씨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박 회장은 “80년대 홍 관장과 함께 파리에서 열리는 이성자 개인전을 보러 갔고 그때 이성자 화가의 작품을 샀다”고 기억했다. 이건희컬렉션에 포함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천년의 고가’는 그때 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작품은 이성자 화백이 어릴 때 살았던 진주의 한옥을 연상하며 붓 한 번 들 때마다 삼형제들에게 밥 한술 떠주는 마음으로 수만 번의 붓을 든 것이라고 이성자의 아들인 언론인 출신 신용석씨는 적고 있다. 이 작품을 포함해 총 7점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이성자는 도불 후 15년 만에 귀국해 성공적인 개인전을 가졌다. 파리로 돌아갈 때 북극과 알래스카를 거쳐 갔는데 비행기 창문을 통해 본 설산과 오로라의 감동은 훗날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983년, 캔버스에 아크릴릭, 129×196㎝. 이성자기념사업회 제공

이성자가 프랑스로 돌아가는 길에 탄 비행기는 북극과 알래스카를 지났다. 비행기 창문을 통해 설산의 아름다움과 오로라를 보며 받은 감동이 훗날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연작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시리즈에는 산과 하늘을 연상시키는 형상이 나타나고 그 위로 노마드적 삶을 상징하는 것 같은 태극 문양이 우주선처럼 동동 떠다닌다. 자식들을 만나고픈 한이 마침내 풀려서일까. 응고된 그리움이 아닌 자유로움이 화면 전체에 흐른다.

김환기 남관 이응노 등과 함께 75년 브라질에서 열린 ‘제13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작가로 참여하는 등 작가로서 성공도 여유를 가져다 줬을 것이다. 뭇 작가의 꿈은 생전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다. 이성자는 생전에 세 차례나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성자는 74세에 투레트에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음양의 이미지를 따서 새 작업실을 짓고 은하수라고 이름 지었다. 아틀리에 은하수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음과 양을 상징하는 두 건물로 구성돼 있다. 두 건물은 비스듬히 어긋나 있는데 어긋난 틈으로 은하수가 흐르는 것이다. 그는 91세(2009년)에 그곳 은하수로 날아갔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명작 in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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