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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화주의 재조명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코로나19 사태가 너무 오래 간다. 이제 모두 지쳤다. 백신 접종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면서 서서히 위드 코로나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경구용 치료제가 상용화되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새 시대의 특징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신자유주의가 퇴조할 것이다. 자유경쟁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 공동체 구성원의 공존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일정 부분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코로나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공화주의의 재조명이다.

우리 헌법 1조 1항은 민주공화국을 천명하고 있다. 이어 2항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주권재민으로 풀이하고 있다. 3항이 있었다면 아마도 공화주의에 대한 설명이었으리라. 그런데 없다. 그 이후 헌법 어디에도 공화주의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그 정신이 일부 경제민주화 관련 조항 등에 반영돼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가 정착하면 공화주의는 저절로 달성되리라는 소박한 기대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은 ‘res publica’라고 한다. ‘공공의 것’ 또는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다. 공화주의는 국가를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국민 모두의 것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사상이요, 운동이다. 그 수단이 민주주의다. 프랑스 혁명 당시 왕당파는 왕정을 유지하면서 일부 개혁을 통해 공화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 공화파는 공화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왕정을 폐지하고 민주정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정의 수립으로 과연 공화주의의 이상이 달성됐던가? 무늬만 국민 모두의 것이었지 국가는 여전히 일부 계층의 것이지 않은가? 단지 그 주체가 귀족계급에서 신흥 자본가계급으로 바뀌었을 뿐이지 않은가? 이러한 반성이 경제적 자유에 대한 대중적 욕구를 분출시켰다. 정치적 자유만으로는 국민 모두의 자유를 실천적으로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의 확산이다. 모두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화의 기반 위에 경제적 민주화가 함께 구현돼야 한다는 인식이다.

경제민주화의 진전으로 공화주의의 이상에 한 걸음씩 다가간 것이 20세기 서구의 역사다. 과유불급이랄까 아니면 역사의 반복현상이랄까, 지나친(?) 경제민주화는 세기말의 급격한 기술 변화와 맞물려 생산성의 정체를 야기했고 다시 자유경쟁주의로 회귀하는 흐름이 생겼다. 신자유주의의 등장이다.

신자유주의와 4차 산업혁명 때문에 그러잖아도 양극화가 심화하던 상황에서 인류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았다. 양극화는 극단적으로 심화했고 이대로는 공동체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쳤다. 신자유주의로는 이 위험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화주의가 재조명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경제민주화를 통한 공화주의 실현은 이제 시대정신이 됐다.

지난 세기의 경제민주화는 사회안전망 구축과 함께 노사관계 민주화를 의미하는 산업민주화가 중심이었다. 이번에는 산업민주화 대신 기업문화의 민주화와 기업관계의 민주화가 핵심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기업 문 앞에서 멈춘다”는 말이 있다. 수직적·위계적인 기업문화를 빗댄 말이다. 코로나 방역을 위한 재택근무가 예상외로 생산성에 오히려 긍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일부 대기업의 사무직에 국한된 제한적 경험이기는 하지만 자율적 관리의 가능성을 확인한 셈이다. 앞으로는 수평적·민주적 기업문화가 빠른 속도로 확산될 것이다. 그런 문화를 더 빨리 정착시키는 기업이 경쟁에서 유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간의 관계도 수평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특히 하도급 거래를 비롯한 위·수탁 거래 관계에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위탁기업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수탁기업은 단순히 실행하는 수직적 구조로는 기업 간의 양극화를 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 50% 수준에 불과한 이런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을 방치한 채로는 기업 생태계 차원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도 없다. 결국 기업 내부 구성원 간의 관계와 기업 간의 관계를 수평적·민주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요구하는 경제민주화의 방향이다. 이것이 재조명되는 공화주의의 실질적 내용이다.

권기홍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전 노동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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