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손영옥의컬처아이

[손영옥의 컬처 아이] 부산 바다미술제가 보여준 가능성


“네덜란드에 비엔날레가 없다고요?” “이탈리아 가서 베니스비엔날레 보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거겠지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다 국내 개인전 때문에 잠시 귀국한 미디어 아트 작가와 최근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한국은 가을이면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국제미술제 등 국제적 규모를 내세운 각종 미술 행사가 전국에서 단풍 축제처럼 열린다. ‘비엔날레 멀미’가 날 지경이라 네덜란드는 어떤지 물어봤는데 이런 답이 돌아온 것이다. 한국이 네덜란드보다 인구가 3배 많기는 하다. 그걸 감안해도 고흐와 렘브란트의 나라도 안 하는 비엔날레가 한국에는 너무 많다. 이를 두고 미술을 선거용 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지자체장의 수요와 생계형 미술 기획자들의 공급이 결합한 기현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술계 관계자는 “소수의 감독들이 이 행사 저 행사 뛰면서 전시가 패턴화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남발되는 한국의 비엔날레는 지방자치가 낳은 부작용이라 통폐합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갖던 차에 이렇게만 개최될 수 있다면 이런 건 지속적으로 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국제미술제를 만났다. 지난달 중순 부산시 기장군 일광 해수욕장에서 개막한 ‘2021 바다미술제’이다. 별 기대 없이 구경을 갔다가 뜻밖에 놀라운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일광해수욕장은 어촌 마을을 낀 아담한 해변이었다. 해운대가 갖는 인공미와 ‘돈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참여 작가 100명, 200명 등 수치를 내세우는 물량 공세는 없었다. 코로나 시대에 맞춤한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를 주제로 내세운 전시는 22명(팀)으로 소박하게 꾸려졌다. 회화, 설치, 영상 등을 마을회관, 해변, 하천 다리, 주택가, 아파트 외벽에 설치해 작품이 마을에 스며드는 듯했다. 세계적 야외 미술 행사로 정평이 난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부산 버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런 놀라운 결과는 올해 처음 국제공모로 감독을 뽑은 덕분이었다. 형식상 공모가 아니라 공모 절차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이 지켜진 점도 작용했다. 추천위원회와 선정위원회를 통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후보의 나이가 겨우 26세라는 점이 준 충격이 컸지만 철저하게 제안서의 우수성에 근거해 뽑았다. 그렇게 해서 최연소 여성 감독이 된 인도 출신 리티카 비스와스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뒤 영국에서 활동했던 비스와스는 직장도 그만두고 한국으로 건너와 전시를 지휘했다. 전시 개최 넉 달 전부터 기장군에 체류하며 작가와 장소를 리서치했다. 이런 장기간 체류는 드물다. 그는 국제 무대에서 뛴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 최고의 상인 터너상 수상자 로렌스 아부 함단, 세계 무대에서 인지도 높은 ‘락스 미디어 컬렉티브’ 등 해외 유명 작가를 유치하는 능력을 보였다. 보다 감동적인 것은 지역 작가의 발굴이다. 버려진 자개농을 붙여서 만든 거대한 알은 전시의 화제가 됐는데, 작품을 만든 김경화 작가는 50대로, 덜 알려진 작가였다. 지금까지 자개로 평면 작업을 하다가 감독과 협업함으로써 처음 입체 작업에 도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스와스는 지역 작가를 구색용으로 넣지 않았다. 전체 22명(팀) 중 부산 작가를 5명이나 참여시키며 작가 역량을 끌어냈다. 이런 전시를 고작 한 달 보여주고 끝내는 것은 아깝다.

다시 한국의 비엔날레 얘기로 돌아가자. 이런 성공 사례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남발되는 비엔날레라면 통폐합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비엔날레는 미술의 미래를 보여주는 가장 전위적인 행사다. 그런 전문적 영역인데도 행정 공무원이 직접 미술감독으로 뛰겠다는 발상을 하는 지자체도 등장했다고 한다. 붕어빵 비엔날레에 조종을 울리는 신호처럼 들린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