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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월세 가구에 주택 바우처 제도 도입해야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서민 주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근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큰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보다 당장 문제는 임대료 부담이다. 특히 서울시 같은 경우 자가 거주 비율이 절반 이하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에 관련된 과제는 수없이 많지만 두 가지가 두드러진다.

첫째는 임대주택 정책이다. 지금까지 정부의 주된 서민 주거 정책은 임대주택 공급이었다. 임대주택은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늘어 2020년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8%에 도달했다. 그동안 준거로 삼곤 했던 수치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하나. 임대주택의 대안 또는 보완책으로 생각되는 주택 바우처(voucher) 제도를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 같다. 이는 서민 가구에 가족 수에 따라 임대료를 보조하는 제도다. 임대주택이 저소득층을 한곳에 모으기 때문에 ‘소셜 믹스(social mix)’가 어렵고 슬럼화되기 쉬운 데다 입주자를 복지에 기대어 사는 층으로 낙인찍는 효과가 있는 반면, 바우처 제도는 그런 효과가 적은 데다 수혜자가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1970년대에 서민 주거 정책을 바우처 쪽으로 전환했다. 다만 지금 미국에서 이 제도가 잘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그것은 1980년대 이후 복지 삭감에 따라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임대주택을 추가로 늘리기도 쉽지 않은 데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늘어난 임대주택 관리도 부담이다. 슬럼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소셜 믹스나 낙인 효과 문제는 있다. 그만큼 주택 바우처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미 서울시에서 주택 바우처 정책을 실시해 왔지만, 금액이 너무 적고 지원 대상도 한정돼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와 겹치곤 한다. 기초생활보장이 개별급여체계로 개편되면서 주택 바우처 수혜 가구가 반감됐다. 그러나 기초생활자의 차상위층도 주거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바우처 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는 전세제도다. 전세제도는 다른 선진국에는 없는 제도다. 한국의 전세제도는 과거에 전쟁, 빈곤, 급속한 인구 이동, 계약 이행 어려움 등의 저신용사회에서 임대 분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집주인은 주택 가격 상승에 따른 차익을 얻고 세입자는 원금을 보전할 수 있어 월세제도와 근본적으로 다른 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세금은 원금이 보전되는 것이 아니라 물가 상승에 따라 녹는다. 전세와 월세 간의 차이는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목돈을 마련할 능력이 없어 월세를 사는 가구의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집주인이 더 높은 비율의 임대료를 요구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전세제도는 큰 문제가 있다. 집값이 오를 때는 ‘갭투자’를 통해 상승을 증폭시킨다. 거기에다 역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전세 대출까지 사실상 소유자에 대한 대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택 가격을 더 올리게 된다. 집값이 내릴 때는 임차인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역전세난에다 금융기관 대출까지 끼어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전세제도는 월세로 바뀌는 것이 불가피하다. 한국이 저신용사회에서 탈피하면서 자연히 전세 비중이 떨어지겠지만, 정책적으로 전세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힘쓸 필요는 없다. 당장 서민 실수요자의 필요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전세 비중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들 첫째 과제와 둘째 과제는 결합할 수 있다. 주택 바우처를 월세에 대해 도입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당장 월세 사는 가구가 더 빈곤하기 때문에 월세를 우선할 필요가 있다. 월세에 주택 바우처를 도입하면 수요 증가로 월세가 오를 수도 있지만, 집주인 입장에서 임대료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져 임대료를 낮춰 줄 여지가 생긴다. 거기에다 장기적으로 사라져야 할 전세에 바우처 제도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은 세입자는 안정적으로 세를 살고 집주인은 분쟁 비용 없이 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 첫발을 뗀 임대차보호법을 더 보완해 나가야 한다. 장래의 서민 주거 정책은 주택 바우처를 통해 월세를 지원하고 그에 맞춰 임대차보호법을 보완하는 쪽으로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제민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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