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물결·황금빛 카펫… ‘화려한 유혹’ 경주의 늦가을

천년고도 경북 경주

이른 아침 경북 경주시 암곡동 무장봉 정상 전망대에서 굽어본 억새 평원. 은빛 억새가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빛을 띠고 있다.

천년고도 경북 경주의 가을은 오랜 시간만큼 화려하다. 억새가 은빛 물결, 금빛 파도로 일렁이는가 하면 노란 은행나무가 황금빛 카펫을 펼쳐놓으며 유혹한다.

경주의 억새 풍경은 동대봉산 무장봉(해발 624m)에서 볼 수 있다. 봉우리 이름은 ‘투구를 감추다’라는 의미다. 삼국통일 후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평화의 시대를 기원하며 투구와 무기를 모조리 무장봉 아래 골짜기에다 숨겼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매년 가을이면 무장봉 억새군락지를 감상하려는 등산객의 발길이 적지 않다. 길이 험하지 않아 온 가족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산행하기에 제격이다. 산행 들머리인 암곡동 주차장에서 무장봉 정상까지는 5.7㎞.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무장봉 5.3㎞와 무장봉 3.1㎞ 갈림길에 도착한다. 전자는 계곡을 끼고 이어지며 길지만 완만한 길이고, 후자는 능선을 따라 짧지만 경사가 가파른 길이다. 정상에서 만나므로 어느 코스를 택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속에 긴 코스로 올라 짧은 코스로 내려오는 일방통행이 시행 중이다.

중간에 암곡습지를 만난다. 담비 벌매 참매 등 멸종위기야생동물과 오리나무 등 70여종의 식물, 딱새 및 곤줄박이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는 곳이다. 경주국립공원사무소가 습지생태계 보전을 위해 자연관찰로(데크), 공원 안내판 등을 설치 중이다. 태양광을 활용해 스마트폰을 충전할 수 있는 스마트 벤치가 눈길을 끈다.

무장봉 억새평원 가운데 설치된 감성 포토존.

무장봉 정상을 하얗게 뒤덮은 억새군락은 148만㎡(44만평)로 강원도 정선군 민둥산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정상석 바로 앞 전망대에 서면 드넓은 평원이 눈과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은빛 억새가 바람에 춤을 춘다. 일제히 엎드렸다 일어나고 숙이고 다시 일어나는 은빛 파장이 황홀경을 연출한다. 아침 햇살을 받은 억새는 금빛 물결로 변한다. 억새밭 가운데 설치된 포토존은 ‘감성 사진’을 안겨준다.

광활한 억새군락지 너머로 포항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토함산 함월산 등 경주와 포항의 고만고만한 산들이 올망졸망 이어진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와 드라마 ‘선덕여왕’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억새 감상은 12월 초순까지 가능하지만 절정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무장봉 정상부는 원래 억새군락지가 아니었다. 1970년대 동양그룹이 이곳에 오리온목장을 조성해 운영했으나 80년대 비업무용 토지 강제 매각조치에 따라 모 축산회사에 매각했다. 축산회사가 96년까지 목장으로 운영하다 문을 닫은 이후 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억새바다로 변모했다.

경주에 다른 계절에는 찾는 발길이 뜸하지만 가을 한 철에 인기를 끄는 곳이 있다. 강동면 왕신리 운곡서원(雲谷書院)이다. 고려 공신 태사 권행과 조선 시대 참판 권산해, 군수 권덕린을 배향하기 위해 1784년(정조 8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문을 닫았다가 1976년 인근에 다시 복원됐다.

노란 나뭇잎이 화려한 운곡서원 은행나무.

서원보다 부속건물인 유연정(悠然亭) 뒤뜰에 우뚝 서 있는 수령 400년 남짓의 은행나무 노거수가 주인공이다. 높이 30m, 둘레 5.3m로 근사한 수형을 지닌 은행나무의 나뭇잎이 오리발을 닮았고 가지가 오리 다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라고 한다. 유연정 지붕 기왓골에 황금빛 오리발처럼 내려앉은 은행잎이 운치를 더한다. 최근 SNS 등을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국적 풍경의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서면 도리마을은 은행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논과 배추밭, 고추밭, 사과밭 위로 방풍림처럼, 가로수처럼, 키다리 아저씨처럼 높이 죽 늘어서 있다.

높이 15m의 노란세상을 펼쳐놓은 도리은행마을.

은행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은 50여년 전이다. 임업협동조합 시험장에서 근무하던 마을 사람이 가로수로 팔기 위해 은행나무 묘목을 심었는데 반백년 세월 동안 자라 높이 15m의 노란 세상을 펼쳐놓고 있다.

마을 안쪽 가장 큰 숲의 중간쯤에 나무의 간격이 약간 넓은 곳이 있다. 이곳이 베스트 포토존이다. 양옆으로 은행나무 기사단처럼 도열해 서 있고, 그 아래 노란 황금빛 양탄자가 깔린 듯하다. 연인·가족 등의 카메라가 쉼 없이 찰칵거린다.

여행메모
보문단지 인근 암곡동… 무장봉 입구
상큼한 향 미나리에 삼겹살 ‘별미’

무장봉은 경부고속도로 경주나들목에서 내려 경주보문관광단지를 지나 암곡동으로 가면 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경주시 암곡동 산1-1 번지’를 검색하면 된다. 대형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주차장에서 마을사람들이 사과 무 배추 더덕 등의 특산물을 진열해 놓고 판매한다. 무장봉은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5시간 정도의 코스다.

무장봉 입구의 먹거리는 삼겹살과 미나리다. 무장봉 계곡 맑은 물로 재배한 미나리의 상큼한 향과 어우러진 삼겹살이 별미다. 미나리전과 미나리가 속을 채운 전병도 꿀맛이다.

도리마을은 경부고속도로 영천나들목에서 가깝다. 건천나들목에서 영천 방향으로 가다 아화에서 심곡 지나 도리로 갈 수도 있다. 주차장과 화장실이 마련돼 있다. 소소한 먹거리도 판다.

보문관광단지에 만든 루지월드가 19일 정식 개장한다. 7만6840㎡에 1.6㎞와 1.4㎞의 루지 트랙 2개 코스, 리프트(350m), 힐링 탐방로 및 상업·편의시설 등을 갖췄다.





경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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