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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지체된 한국형 복지국가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따지고 보면 한류의 원조는 한국형 경제모델이다. 특히 1980년대 말부터 한국은 민주화와 서울올림픽, 3저 호황으로 이어진 도약을 통해 세계 찬사를 받는 발전모델로 떠올랐다. 저명한 학자와 세계경제기구들이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이 연이어 한국을 견학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우리 성공 경험을 외국에 전수하겠다며 국제대학원을 세운 것도 이때다(1997년 외환위기의 시련을 겪었지만 한국경제는 오히려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사이즈도 키우고 1인당 소득도 3만 달러를 넘기며 명실상부한 G7 국가 반열에 올랐다).

지난 2년간 코로나 팬데믹과 싸우며 한국은 K방역뿐 아니라 K뷰티와 바이오,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서 세계적 수준의 제조 능력을 뽐내며 또 한번 도약 기회를 잡았다. 최근에는 인공위성과 잠수함에 이어 2033년 한국형 항공모함 건조에 이르기까지 군사 분야에서도 K시리즈를 이어갈 전망이다.

문제는 이런 성취의 크기만큼이나 그늘 또한 깊어진다는 점이다. 경쟁이 격화되고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며 각종 사회지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자살률과 산재사망률, 출산율과 성평등지수 등은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사회갈등 지표는 터키와 최하위를 다투고 정치적 양극화는 대선을 내전으로 몰아갈 지경이다. 경제성장이 국민 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부국안민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다. 한때 평생직장과 기업 중심의 복지제도가 한국형 복지모델로 정착하는 듯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이 깨지고 비정규직이 크게 증가하며 이 모델의 수혜 계층은 상위 20% 정도로 한정돼 버렸다. 김대중정부 이후 기초생활보장이나 노인요양보호와 같은 복지 제도 도입과 재정 확대가 있었지만 구멍 난 안전망을 땜질하는 수준이었다. 어떤 대통령도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버텨낼 튼튼한 복지국가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몇 차례 시도는 있었다. 노무현정부 후반기 청와대 주도로 양극화 해소를 위해 1100조원 규모의 선진복지국가를 위한 ‘비전 2030’을 만들었지만 이명박정부는 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국형 복지모델을 국가 목표로 다시 끌어올린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2009년 박정희 30주기 추도식에서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며 2012년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한국형 복지국가를 내걸었다. 상징 인물로 김종인까지 불러들였지만 선거가 끝나자 그를 다시 찾지 않았다.

문재인정부야말로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한국형 복지국가에 천착했어야 한다. 촛불에는 탄핵만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약자들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5년 전 11월 광화문 집회에서 “ 돈이 없어도 모든 사람이 평등한 나라가 되면 좋겠다.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나 재벌만 잘사는 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라던 한 초등학생의 과장된 외침을 새겨들었어야 했다. 문 정부는 탄핵에 찬성했던 234명의 여야 의원들과 협력하여 ‘중부담-중복지’의 정치연합으로 나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최저임금으로 다투며 분열을 거듭했다(촛불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젊은 청년들이 문정부의 승자독식과 내로남불, 집값 상승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흥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복지국가 리더십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복지국가는 경제성장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라 특정 시기에 비전과 정책을 갖고 기득권에 도전하는 용감한 지도자에 의해 성취된다. 1930년대 미국 프란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은 공산주의자 소리를 들어가며 사회보장제도를 밀어붙였고 1940년대 영국 윌리엄 베버리지 노동부 차관은 전 국민 무상의료라는 대담한 구상을 내놨다. 이러한 복지국가로의 전환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는 또다시 번영의 길을 찾았다고 평가된다.

코로나 팬데믹과 디지털 전환, 2050 탄소중립은 자본주의의 또 다른 수정을 요구한다. 우리도 이제는 한국형 자본주의를 상상해야 하고 그 성격은 어떤 복지모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침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이런저런 명목의 대규모 복지 투자를 약속하고 있다. 관건은 몇몇 공약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를 얻어 복지국가를 향한 큰 걸음을 뗄 수 있느냐이다. 작은 두 걸음으로는 전환의 계곡을 뛰어넘을 수 없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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