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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제비뽑기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박지훈 종교부 차장


감리교단은 오랫동안 금권선거로 몸살을 앓았다. 선거가 끝나면 ‘불복→소송→직무 정지’로 이어지는 구질구질한 스토리가 반복됐다. 교단 안팎에선 자성과 자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종래엔 온갖 대책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제비뽑기 선거제다. 2019년 9월 16일자 국민일보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감독회장과 연회 감독을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검토 중이다. 제비뽑기 선거제가 통과될 경우 감독회장 및 감독 선거 과열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제비뽑기 선거제는 말 그대로 투표제를 추첨제로 바꾸자는 거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교계에서는 그간 추첨을 통해 투표를 갈음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만 하더라도 10년 넘게 제비뽑기로 임원을 뽑았다. 장로교 창시자인 장 칼뱅도 제비뽑기 옹호론자였다. 성경에는 추첨을 통해 뭔가를 결정했다는 얘기가 수두룩하게 실려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의 기업을 제비 뽑아 아홉 지파와 반 지파에게 주었으니’(수 14:2)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행 1:26)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

망가진 민주주의를 한탄하며 추첨제에서 희망의 기미를 찾으려는 모색은 교회 바깥에서도 있었다. 일본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이 쓴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가 그런 경우다. 그는 선거로 복수의 후보자를 뽑은 뒤 추첨을 통해 대표자를 가리자고 했다.

뒷배가 돼주는 논리는 이런 내용이다. 추첨으로 지도자를 뽑으면 지도자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후계자를 둘러싼 소동도 잦아들 것이다. “권력의 고정화”도 난망해진다. 관료제로 대표되는 부르주아 독재도 결딴낼 수 있다(가라타니는 ‘의회제 민주주의=부르주아적 독재’ ‘추첨제=프롤레타리아 독재’라고 규정했다).

저널리스트 고종석은 2001년 4월 ‘인물과 사상’에 발표한 ‘제비뽑기의 정치학’에서 가라타니의 견해를 반박했다. 그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 주장에 선뜻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추첨제 도입은) 데카르트 이전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고종석 역시도 “그것은 적어도 진지한 생각거리는 된다”며 “가라타니의 모색에 존경을 표한다”고 평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역시 2015년 한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검찰총장이라도 제비뽑기로 뽑자고 제안한 바 있다.

“공직자들, 특히 검찰총장을 제비뽑기로 뽑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전국의 법학자, 법관, 변호사, 검사들이 모여 3~5명의 후보자를 투표로 뽑는다. 그런 다음 이름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대통령이 1인을 무작위로 뽑아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식으로.” 물론 추첨제를 도입했을 때 예상되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높아질 것이고, 제비뽑기 결과에 신탁의 의미를 두려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다. 지도자에게 권위가 생길 리도 없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릴 것도 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요즘 제비뽑기로 대통령을 뽑는 건 어떨까 상상해보곤 한다. 추문과 막말이 매듭 없이 이어지는 선거판을 보는 게 지긋지긋해서다. 가라타니의 말마따나 제비뽑기로 지도자를 뽑으면 그 과정에 불법이나 공작이 개입될 가능성이 희미해진다. 백년하청으로 여겨지는 정치판 분위기와, 정치권 둘레에서 벌어지는 광적인 팬덤 문화를 바꾸는 데도 도움이 될 거다. 실현 불가능한 헛소리로 들리겠지만 도무지 지지할 후보를 정할 수 없다는 많은 유권자에겐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일 게 분명할 듯싶다.

박지훈 종교부 차장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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