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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수능 필적확인 문구

한승주 논설위원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많고 많은 사람 중에 그대 한 사람’….

추운 겨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이 문구들은 역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필적확인 문구다. 수험생은 수능 매 교시마다 답안지에 이를 옮겨 적어야 한다. 부정행위나 대리시험이 의심될 때 글씨체를 대조하기 위해서다. 2004년 치러진 2005학년도 수능에서 사상 초유의 대규모 부정행위가 적발된 것을 계기로 그다음 해 수능부터 도입됐다. 첫 필적확인 문구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가져왔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부정행위 없이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제 필적확인 문구는 부정행위 방지 수단을 넘어 같은 해 시험을 본 또래들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추억이 됐다.

필적확인 문구 선정은 간단치 않다. 수능과 모의평가를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시험문제뿐 아니라 이 문구도 결정한다. 출제위원장단이 문구를 추천해 위원들이 투표로 결정한다. 기준이 의외로 까다롭다. 수능 답안지에 처음으로 쓰는 문구인 만큼 필적 감정을 하면서도 수험생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문장 길이는 12~19자 사이, 국내 작가 작품만 가능하다. 사람마다 ‘ㄹ’ ‘ㅁ’ ‘ㅂ’을 쓰는 방법이 제각각이라 이 자음 중 적어도 하나가 2개 이상 포함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시의 한 구절에서 채택됐다.

지난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수능 응시생 필적확인 문구는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였다. 시인 이해인 수녀의 시집 ‘작은 기도’에 수록된 ‘작은 노래 2’의 일부분이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비로소/ 큰 숲을 이루게 될 묘목들/ 넓은 하늘로의 비상을 꿈꾸며/ 갓 태어난 어린 새들.’ 시험 치르느라 고생 많았던 수험생들, 대학 대신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모두 넓은 하늘로 날아올라 각자의 꿈을 펼치길 바란다. 세상은 넓고 그대들은 이제 시작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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