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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올림픽 보이콧

고승욱 논설위원


1956년 호주 멜버른올림픽은 남반구에서 열린 첫 올림픽이었다. 계절이 북반구와 정반대여서 개막식은 11월 22일이었다. 그런데 올림픽을 1개월 앞두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시민봉기가 일어났다. 탱크를 앞세운 구 소련군의 진압으로 3000명 가까운 시민이 숨졌다. 여기에 항의해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가 올림픽에 불참했다. 올림픽 사상 첫 보이콧이다. 정작 소련과 헝가리는 참가해 주먹과 욕설이 난무하는 전쟁 같은 경기를 치렀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올림픽에는 탄자니아를 비롯한 아프리카 26개국이 보이콧을 했다. 극단적인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쫓겨난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럭비 경기를 중단하지 않은 뉴질랜드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제재하지 않아서였다.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검은색 원이 빠져 오륜기가 사륜기로 전락한 보이콧 사건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동서냉전의 막바지에 차례로 열린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LA 올림픽이었다.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불참을 선언하며 서방국에 동참을 요구해 65개국이 보이콧에 나섰다. 남한, 서독, 일본, 캐나다, 터키 등은 아예 참가하지 않았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IOC 깃발을 들고 입장해 ‘보이콧은 하되 선수는 참가한다’는 묘한 플랜B를 실행했다. 소련은 4년 뒤 보복적 보이콧을 주도해 사회주의 14개국이 불참했다. 동서 화해의 장으로 불린 서울올림픽에서도 남북 공동 개최 요구가 무산된 북한이 보이콧에 나서 쿠바, 에티오피아, 니카라과가 동참했다.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지구촌의 축제라는 말이 무색하게 올림픽은 종종 전쟁과 테러로 오염됐다. 올림픽 보이콧은 준비에 올인한 주최국의 체면을 구기고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는 강력한 효과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 하지만 힘없는 나라들은 냉전 때처럼 ‘덩달아 보이콧’에 또 나서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다.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 가능성에 베이징동계올림픽을 75일 앞두고 우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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