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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 리키로… 유기견 축복이의 견생역전 [개st하우스]

지난 6월 용인서 구조된 유기견
구조자 힘써 9월 미국 입양 확정
코로나19로 출국 못 하고 미루다
유학생 봉사자 도움으로 미국행

개st하우스는 위기의 동물이 가족을 찾을 때까지 함께하는 유기동물 기획 취재입니다. 사연 속 동물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유튜브 ‘개st하우스’를 구독해주세요.

미국 버지니아주로 입양이 확정된 유기견 축복이가 지난 9일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는 모습. 유학생 홍유진씨는 축복이를 개인 화물로 등록한 뒤 미국 현지의 입양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축복이의 입양이 확정된 것은 지난 9월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이동봉사자를 구하지 못해 2개월을 기다렸다. 인천=권현구 기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8일, 기자의 집으로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취재하다 만난 생후 7개월 꼬마 유기견, 축복이의 해외 입양을 돕는 날이었거든요. 축복이는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에서 구조된 어미 유기견이 젖을 물리며 키운 금쪽같은 아들입니다.(국민일보 7월 31일자 17면 참조)

축복이는 기자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이튿날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떠날 계획입니다. 그곳에는 축복이를 맞이할 새 가족이 기다리고 있죠. 해외 입양 전 고향에서 마지막 밤을 기자와 함께 보내기로 한 겁니다.

축복이(왼쪽)는 지난 6월 경기도 용인에서 어미 유기견과 함께 구조됐다. 구조 당시 생후 2개월이던 축복이는 이후 서울 강남의 한 동물병원에서 5개월간 지내며 건강을 회복했다. 이서연씨 제공

애견쿠션, 배변패드… 임시보호 준비

오후 6시, 퇴근한 기자는 애견용품점으로 향했습니다. 어린 유기견이 낯선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려면 여러 가지 준비물이 필요해요. 동물들이 좋아하는 향이 강한 육류, 생선류 간식, 유기견이 깔고 앉을 애견쿠션, 배변패드 등을 구매했습니다. 소품들은 집안 곳곳에 배치한 뒤 축복이가 쉽게 찾아가도록 간식 향을 묻혀두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손님을 기다렸습니다.

“안녕하세요, 펫택시인데요. 곧 축복이가 도착하는데 데리러 오시겠어요?”

오후 8시30분쯤 축복이가 도착했습니다. 차량 뒷문을 열자 웅크리고 있던 축복이가 기지개를 켜네요. ‘퇴근길을 뚫고 오느라 수고가 많았어.’

남성을 경계하는 유기견이 많다 보니 펫택시는 일반 택시보다 여성 운전사 비율이 높습니다. 펫택시 기사 김유리(35)씨는 “제가 여성이라 그런지 축복이가 한결 편해 보였다”며 “오는 내내 멀미하지 않고 편하게 자더라”고 말했습니다.

축복이도 남성을 경계하나 봅니다. 남성 기자가 산책줄을 잡자 축복이의 꼬리가 축 내려앉았습니다. 하룻밤을 잘 지내려면 친해져야지요. 인근 공원을 함께 돌며 30분간 산책했습니다. 한참 달리고 시원하게 배변까지 본 뒤에야 축복이의 꼬리가 쫑긋 섰습니다. 기분이 회복됐다는 뜻입니다. 이젠 집에 들어갈 준비가 됐습니다.

한국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출국을 하루 앞둔 지난 8일 축복이는 기자가 거주하는 경기도 고양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고양=이성훈 기자

축복이는 적응력이 좋은 강아지입니다. 보통 유기견들이 두려워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어두컴컴한 복도를 씩씩하게 걸어가더군요. 현관에서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집안 곳곳을 킁킁거립니다.

오후 9시, 저녁밥을 챙겨줬습니다. 배가 고팠던지 사료 한 그릇을 비우는 데 채 1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그러고는 푹신한 쿠션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네요. ‘휴, 무사히 적응해서 다행이야.’ 낯가림이 심한 동물들은 잔짖음, 낑낑거림, 배변실수 등을 해서 밤잠을 설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곤히 잠든 축복이가 귀여우면서도 딱하더군요. 한창 사랑받을 개린이(개+어린이) 시기에 축복이는 길거리를 떠돌다 구조된 뒤 동물병원에서 지냈습니다.

서러운 떠돌이 생활도 어느덧 끝이 보입니다. 축복이는 9일 오전 10시 미국행 비행기에 탑승합니다. 15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견디면 축복이는 마침내 평생 가족을 만납니다.

밤 11시, 잠든 축복이의 모습을 촬영해 구조자 이서연(30)씨에게 보냈습니다. 축복이를 직접 구조하고 해외 출국까지 주선하는 등 축복이의 대모 역할을 해온 시민입니다.

‘축복이는 무사히 잠들었어요. 내일 오전 6시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겠습니다.’

‘잠 못 들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편안한 밤 보내세요:)’

유기견 생활 안녕…축복이의 출국날

오전 5시30분, 축복이가 일찍 눈을 떴습니다. 오전 10시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면 늦어도 오전 8시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하지요. 서둘러 축복이의 새벽 산책과 배변을 마친 뒤, 취재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오전 7시30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꿋꿋하던 축복이도 거대한 공항터미널 건물과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모습에 긴장한 듯 꼬리를 숨겼네요. 키 190㎝인 사진기자를 보고 뒷걸음질 치기도 했는데요, 사진기자는 “축복아, 미국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크다”며 농담을 건넸습니다.

이튿날인 9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축복이. 인천=권현구 기자
인천=권현구 기자

저 멀리 출국장에서 누군가 축복이에게 반갑게 달려옵니다. 이날 축복이를 미국에 데려다줄 유학생 홍유진(22)씨입니다. 유진씨는 축복이를 개인 화물로 등록하고 미국 현지의 입양자에게 인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해외이동봉사자를 구하는 게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축복이도 미국 입양이 확정된 것은 지난 9월이지만 유진씨를 만나기까지 2개월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유진씨는 “축복이 전에도 2마리의 유기견을 미국까지 데려다 줬다”며 “현지 가족과 강아지가 만나는 순간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출국 때마다 해외이동을 돕고 싶다”고 합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사는 예비 가족들은 축복이의 도착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연씨는 “미국 입양자들이 리키(Ricky)라는 새 이름을 붙여줬다”면서 “벌써부터 리키가 좋아하는 음식, 장난감 등을 물어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8시30분, 광견병 예방접종 증명서, 검역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 제출을 마쳤습니다. 축복이는 이동장(켄넬)에 실려서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기내 동물 칸에 탑승했습니다.

축복이가 질병 예방접종 등을 증명하는 출국 심사를 마친 뒤 켄넬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인천=권현구 기자

15시간 비행 끝에 미국 가족 품으로

이튿날 늦은 저녁, 이동봉사자가 축복이의 미국 도착 영상을 보내왔습니다. 15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이동장 밖으로 나온 축복이가 낯선 미국땅을 밟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군요. 미국 가족들은 어설픈 한국 발음으로 “헬로, 축복”이라며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무사히 잘 도착했구나 축복아, 고생 많았다. 오랜 떠돌이 삶을 마치고 이제 평생 행복하길 바랄게.’

인천=이성훈 기자, 김채연 인턴PD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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