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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에 금괴 2t 매장”… 구체적 매장 장소 놓고 說만 분분

‘금괴 매장설’ 현장에 가보니

전북 익산 주현동의 옛 ‘오하시 농장’ 사무실 창문으로 보이는 사무실 내부 모습. 2019년 복원된 계단 뒤쪽 나무판자가 깔린 곳이 광복회가 추정하는 금괴 매장 장소다.

지난 6일 국가등록문화재인 전북 익산의 옛 일본인 농장 사무실에 30대 중반 A씨가 침입했다가 검거됐다. 이 건물은 ‘땅속에 1400억원대 금괴 2t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돈 이후 올 3월부터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26일 익산경찰서에 따르면 전북 정읍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유튜브 영상에서 금괴 매장설을 접한 뒤 무단으로 건물에 들어갔다가 주민 신고로 붙잡혔다. 미확인 풍문이 현실의 담장을 넘게 만든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농장 사무실에 진짜 금괴가 묻혀 있든 아니든 금괴를 훔치려는 목적을 갖고 해당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조사돼 절도미수 혐의로 입건했다”고 말했다.

어둠의 역사, 꼬리 무는 소문

최근 찾은 문제의 농장 건물은 모든 창문과 입구가 봉쇄돼 있었다. 1945년 일제 패망 뒤 지역 화교들의 소학교로 사용됐던 건물은 사무실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낡은 창고, 앞쪽에 옛 교실 터가 자리하고 있다. A씨는 유일하게 막혀 있지 않은 창고 한쪽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 검거 후에는 이 창문도 나무 합판으로 덮여졌다.

인근 주민들은 금괴 매장설이 일제시대 호남지역 최대 쌀창고로 알려진 ‘오하시 농장’ 주인이 광복 후 일본으로 돌아간 뒤 나왔다고 전했다. 오하시 요이치 일가가 99만2000㎡(약 30만평)에 달하는 농장을 경영하며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광복 후 일본으로 가져갈 수 없어 각종 보물, 금괴를 농장에 묻어 놓고 떠났다는 게 풍문의 요지다. 현재 주현동성당 주차장으로 쓰이는 농장 사무실 앞 부지는 1919년 4월 4일 독립만세운동 때 조선인들이 일본 군경에 학살된 장소이기도 하다.

오하시 일가가 떠나고 농장 사무실 주인은 세 번 바뀌었다. 공동 명의로 소유하면서 소학교로 운영한 화교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신입생 모집이 어려워지자 이 건물을 사실상 방치했다. 공동대표 중 한 명이던 화교 3세대 유모(72)씨는 2018년 6월 28일 주현동성당에 사무실 건물·부지를 6억여원에 팔았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긴 세월 동안 이곳을 매입하겠다거나 발굴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실제 접촉했던 이는 한 명도 없었다”며 “그래서 성당 쪽 문의가 들어왔을 때 빨리 판 것”이라고 했다. 성당 관계자도 “성당이 보유했던 때도 매입 시도나 발굴사업 계획 타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익산시청은 사무실과 부지 일부를 지난해 12월 24일 주현동성당으로부터 5억2000만원에 매입했다. 3·1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인근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문화재 정비사업을 진행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익산시는 올 초 사무실 건물과 부지를 항일운동기념관으로 개보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농장 인근에서 평생을 살았다는 고모(71)씨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는 일본 놈들이 재산을 금괴로 바꿔 묻어 놓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있긴 했다”고 전했다.

다시 등장한 ‘탈북민 김씨’

사진은 광복 후 화교들이 소학교로 사용했던 창고 건물로 1960년대 증축했다.

금괴 매장설은 익산시가 문화재 정비사업을 시작한 뒤 그럴싸한 ‘시나리오’가 뒷받침됐다. 2012년 대구 동화사 대웅전 금괴 매장 소동을 일으켰던 탈북민 김모(50)씨가 오하시 요이치 손자의 부탁을 받아 정비사업 발주에 참여하고 금괴 발굴에 나선다는 소문이었다.

이는 경찰에도 포착됐다. 익산경찰서 관계자는 “올해 초 시중에 그런 얘기가 돌았다”며 “정보 수집 차원에서 파악했고, 따로 정리를 하거나 보고서를 만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인근 CCTV를 늘리고 순찰을 강화했다고 한다. 소문은 온라인상에서의 포장을 거쳐 더욱 빠르게 번져나갔다. 지역 언론도 가세했다.

이런 와중에 광복회 귀속재산특별위원회까지 뛰어들었다. 귀속재산특별위는 익산시청에 낸 사전탐사 및 매장물 발굴 허가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전북 행정심판위원회에 해당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달 행정심판위 주관 현장검증에 참여한 광복회 관계자들은 “농장 사무실 구석 계단 근처에서 명백한 도굴 흔적을 발견했다”며 지난 2일 문화재청에 조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풍문의 신빙성은 높지 않다. 동화사 관계자는 김씨에 대해 “못 믿을 사람”이라고 촌평했다. 그는 “당초 할아버지가 대구의 절 어딘가에 묻어 놓은 금괴를 찾아야 한다며 처음 동화사에 찾아왔던 건 탈북민 가족 4명”이라며 “그 두 달 뒤 김씨가 갑자기 나타나 대웅전 뒤편을 매장 장소로 지목하며 발굴을 주장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조건부 발굴 허가를 내줬지만 작업 방식 등을 두고 당사자들이 갈등을 빚다 결국 무산됐다. 김씨도 종적을 감췄다.

매장 추정 장소도 소문 부상 때마다 달라지는 모습이다. 올해 초 금괴 매장설이 다시 떠올랐을 때만 해도 매장 위치로 지목된 곳은 사무실이 아닌 창고였다. 일부 현지 주민들은 주현동성당 인근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귀띔했지만, ‘카더라’ 외에 근거는 없었다.

광복회 측의 의혹 제기에 대해 익산시청은 도굴 흔적이 아니라 본인들 작업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이다. “2019년 문화재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내부 계단만 복원한 뒤 나머지는 사료 없이 임의대로 진행할 수 없어 임시로 닫아 놓았다”는 것이다. 시청 관계자는 “지역 사회가 소문에 계속 휩쓸리면서 행정력 낭비가 이어지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익산=글·사진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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