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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교회를 넘어 사회로

우성규 종교부 차장


“할머니는 만식의 집을 지나칠 때마다 들리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끌렸다. 지금껏 그렇게 흐뭇한 가락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윤씨 할머니는 좀 더 오래 살아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예순여섯 살에 글이라곤 기역 자도 몰랐다. 그러나 가사가 적혀 있는 노래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부쩍 글을 배울 욕심이 났다. 그래서 손녀딸에게 열심히 배웠다.”

숭실대 설립자 윌리엄 M 베어드 선교사와 함께 미국 북장로교 파송으로 동역한 부인 애니 베어드(1864~1916) 선교사가 1909년 저술한 ‘따라 따라 예수 따라가네(Day Break in Korea)’에 나오는 글이다. 가사가 적혀 있는 책은 찬송가를 말한다. 일평생 가난에 허덕이고 가부장 질서 아래서 여성이기에 더 고통받았던 할머니들에게 찬송은 천상의 곡조로 다가왔다. 위로받고 싶고 내용을 더 알고 싶어서 한글을 배우고 신앙의 길로 들어섰다. 평생 문맹이었던 할머니들까지 한글을 깨우치게 만든 원동력은 바로 한글 성경과 한글 찬송가였다.

국내 최고(最古) 출판사인 대한기독교서회는 1890년 설립됐다. 제중원 의사였던 존 W 헤론 선교사가 설립을 제안해 1889년 10월 조선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이 서울 정동의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 집에 모여 서회 설립을 논의했다. 이듬해 6월 ‘조션셩교셔회’란 이름으로 공식 창립을 선언했고, 창립 때부터 한글 발간 원칙을 밝혔다. 1894년 고종이 갑오개혁에서 한글을 마침내 나라글자로 인정하기 전까지는 국한문 혼용이 대세였다. 선교사들은 조정보다 앞서 한글 전용을 선언하고 한글을 통한 근대화를 주창했다. 서회는 130여년간 한글 찬송가 발간을 맡아 한국교회 연합에 힘썼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번역한 ‘셩교촬리’, 조선인이 저술해 출판한 최초의 문서 ‘사람의 모본’, 최초로 삽화가 들어간 책 ‘셩경도셜’, 최초의 번역 소설 ‘인가귀도’, 최초의 인체 생리학 교과서 ‘젼톄공용문답’, 조선인이 쓴 첫 번째 기독교 변증서 ‘파혹진션론’, 최초의 순한글 지리지 ‘사민필지’, 최초의 동물학 교과서 ‘동물학’ 등이 모두 서회에서 출간됐다. 배움의 길에서 소외된 여성과 할머니들에게 더 주목하고 한글을 깨치고 생각을 바꾸게 했으며 학교와 병원과 감옥에 한글 서적을 보급해 새 희망을 불어넣었다.

서회는 지난 23일 서울 중구 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130+1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서회에 대한 상찬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서회 사장인 서진한 목사는 “130주년 기념사업을 하면서 부끄러움도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교회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는커녕 시대와 맞서고 시대에 뒤처져 오늘날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찾기 어려워져만 가는 현실, 닫힌 존재로 늙어가는 존재로 점점 자리매김하는 교회의 아픈 현실이 곧 서회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자성을 내놨다.

일부의 코로나19 방역 일탈로 이런 현상은 가속화됐다. 특히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기독교가 배척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우리만의 언어로, 사회는 전혀 모르는 방언으로, 그것도 신앙의 열정이란 이름으로, 한국 사회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언설을 내놓는 것은 그만큼 교회와 성도의 고민이 부족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교회는 교계 안에서 게토처럼 머물러선 안 된다. 한국교회를 넘어서 한국 사회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야만 전도도 선교도 부흥도 가능하다. 130년 전 한글 전용으로 근대화의 문을 활짝 연 기독교가 디지털 문명의 시대 새로운 문서선교의 사명을 이어가려면 우선 일반 사회와 통하는 언어로 매일의 뉴스를 소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국민일보의 사명이기도 하다.

우성규 종교부 차장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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