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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희의 인사이트] 목사로 산다는 것


얼마 전 어느 대기업 회장이 22년간 지낸 사무실을 떠나는 소회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서울의 북쪽을 둘러싼 산들이 병풍처럼 한눈에 보이는 자기 방에서 늘 자신의 눈길을 끈 것은 그 아래 동대문 뒤쪽의 집들이 다닥다닥 몰려있는 동네와 치열한 삶들이 있는 시장이었다고 했다. 큰 쌍안경을 사다 놓고 매일 그곳의 삶을 보는 것은 기업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생각하게 해줬고, 기업인이기 앞서 한 사람의 국민이라는 자각을 하게 해줬다고 썼다. 그러면서 이제는 상징적 자리까지 모두 물러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더 돌보고 사회에 좋은 일 하며 살아가겠다고 했다.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다던 이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직원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페친이 많다. 전날에는 아들 둘이 회사를 떠나 독립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30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접한 대기업 회장이나 재벌가 자제 중엔 밀랍인형 같은 삶을 거부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 이도 더러 있었다.

목회자들의 모습도 미디어에 비친 게 전부는 아니다. 종교국에 근무하면서 목사님들의 개인적 연민을 보게 된다. 10대 아들을 사고로 갑자기 잃고도 바로 다음 날 주일 예배 강단에 서야 했던 목사님은 본인도 두 번이나 항암치료를 받았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신학적으로 죽음을 연구하고 있다. 지방 기숙사에 있던 학창 시절 엄한 아버지 때문에 주말이면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고 외로웠는데 수십년 지나서야 “내가 너무 심했지?”하며 ‘화해’한 부자(父子) 목회자도 있다.

김병삼 만나교회 목사는 얼마 전 한 방송에서 33년간 지적 장애를 가진 딸을 키운 목회자로서의 번민과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다. “예수를 믿으면 잘 돼요, 노력하면 돼요 같은 엘리트 중심적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딸의 장애를 통해 하나님이 나를 바꾸셨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목회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나는 신학교 가기 싫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왔어. 목사 되기 싫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목사가 됐어. 내가 원하는 자리에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실패한 거라고 생각하고 만족이 없었다”며 “그러나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를 바꿔가시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소탈한 모습도 마주하게 된다. 대전의 새로남교회를 방문했을 때다. 머리 희끗희끗한 목사님을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치자 젊은 여자 성도 두 분이 “목사님, 멋져요”라고 했다. 신선했다. 지난달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주요 대형 교회 목사님들의 조찬 모임에 초대받아 갔을 때도 격의 없는 목사님들의 모습을 봤다. 한 목사님이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자 나이 지긋한 목사님들이 너도나도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드셨다. 단일교회로 최대인 57만 성도를 이끌고 있는 목사님은 테이블 한가운데 앉으시라는 주변의 권유에도 슬그머니 끝자리로 옮기면서 “나는 이 자리가 편해요”라고 했다.

‘위드 코로나 시대 목회를 말하다’를 주제로 국민일보가 지난달 말 주최한 국민미션포럼은 IT전문가들의 경연장이었다. 1991년 풀러신학교 칼 조지 신학자의 예측처럼 새로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메타 처치’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며 시내산이나 갈릴리 호수를 메타버스로 구현해 전도를 위한 체험공간으로 활용하고 노약자와 중환자들이 VR로 예배에 참여하도록 하자는 제언도 나왔다. 미래 목회 방향을 고민하는 목사님들의 혜안과 박학다식함에 감탄했다.

목회자 신뢰도가 떨어진 혼탁한 이 시대에 목사로 사는 것은 가짜 신들과 싸우면서 끊임없이 연단하고 역사에 길을 내는 어려운 일이다. 주님의 종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명희 종교국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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