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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민주주의는 암흑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미국의 유력지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를 열면 큼지막한 고전 로마체로 쓰여진 신문명 바로 아래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필기체의 한 문장이 나온다.

‘Democracy Dies in Darkness’. 번역하면 ‘암흑 속에선 민주주의가 자라지 않는다’ 정도가 어감을 잘 살린 해석이지 싶다. 창간 140년이 넘은 워싱턴포스트가 이 슬로건을 매일 지면과 온라인 웹사이트에 사용한 건 4년여에 불과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사임케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 기자가 자신의 저서에 사용했던 말을 차용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017년 2월 22일 아침 배달되는 신문부터 이 표제를 사용했다. 좁게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백악관 기자실 독선 운영과 언론 재갈 물리기를 비판하기 위해서였고, 넓게는 트럼프 행정부 전반에서 관찰되던 백인 우월주의와 극단적 보수 성향 정책들을 꼬집기 위해서였다. 신문은 트럼프 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에도 슬로건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공화당 매파가 집권하든, 민주당 비둘기파가 집권하든 이 말은 가리지 않고 지켜져야 할 언론의 지향점이 돼야 한다는 선언 같은 느낌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다 좌절됐던 언론중재법을 이 문장으로 빗댈 수 있을 것 같지만, 암흑 속에선 민주주의가 자라지 않는다는 함의는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 제도, 사회 곳곳에도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정치학자들은 인간이 만든 정치 체제 가운데 민주주의를 가장 정의로운 정체로 꼽는다. 한 사회, 한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정부 형태가 특정 계층이나 계급, 정파에 치우치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하기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민주주의는 정의로움을 넘어 공적 결정의 효율성도 충분히 담보한다. 정부가 사적 이익의 이름이 아니라 공적 이익의 이름으로 정책을 집행하는 게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훨씬 더 좋아지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 일당독재의 중국이 모든 정치적·경제적 활동에서 ‘관시(關係)’를 동원해야 성공할 수 있는 사회이고, 이로 인해 부정부패와 사실 왜곡이 진행되는 세상이란 점을 고려해 보면, 민주주의 정체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편가르기가 아니다. 똑같은 사태를 전혀 다르게, 정반대로 바라보는 시선도 토론과 교육을 통해 서로 동감하는 중간지대를 찾을 수 있다는 신념이다. 완전히 달랐던 주장과 의견이 타협과 합의점을 찾으려면 사실부터 확인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이 복잡하게 얽혀 전체 시민의 공공선을 재단해 버리는 정치에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내 주장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사람한테는 독선과 편견만 남기 마련이다.

우리 정치의 시계는 내년 상반기에 치러질 대통령선거로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무리 여당과 야당이 정략을 짜고 상대방을 공격한다 해도 새로운 정부는 시민들의 선거라는 최후심급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대한민국 시민들은 지금 그 최후심급을 향해 길을 걷고 있다. 어둠 속에선 길과 늪이 구별돼 보이지 않는다. 길을 비추는 빛이 있어야 한다. 빛은 정치적 신념의 대립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사실을 확인해 정파들의 허상과 실상을 구분하는 데서 나온다. 지난 정부의 성과와 과오를 확인하고, 새로운 대선 후보들의 ‘장밋빛’ 공약의 실상을 가늠해 봐야 길은 보인다. 그리고 이 길 찾기를 제도적으로 정략적으로 혹은 방만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워싱턴포스트 표제처럼 민주주의는 암흑 속에선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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