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바다 위에서 죽음을 떠올린 순간 별처럼 다가온 책

[내 인생의 책] 신곡(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2011년 5월, 저는 서해 연평도에 있었습니다. 해군 장교로 꽃게잡이 철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 행위를 막기 위해, 북한 어선 및 북한군 함정을 감시하기 위해 고속정을 타고 있었습니다. 꽃게잡이 철 백령도와 연평도는 긴장감으로 가득합니다. 중국 어선이든, 북한 어선이든, 의도가 파악되지 않은 북한 함정의 움직임이든, 조금이라도 위협 요소가 있으면 고속정들은 때를 가리지 않고 출동해야 합니다. 화장실에 있다가, 밥을 먹다가, 잠을 자다가도 말입니다. 이런 일이 꽃게 철 내내 이어집니다.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당시 제게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 안 읽히기는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존 밀턴의 ‘실낙원’,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완독해야 하지 않나 막연하게 생각했고 나머지 책들은 어떻게든 꾸역꾸역 읽어냈지만 ‘신곡’은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을 때조차 ‘신곡’ 읽기는 동경으로만 남아있었습니다.

그해 5월 어느 날, 하늘에는 달조차 보이지 않고 별들만 드문드문 보이는 밤이었습니다. 북한 함정이 기동을 시작해 긴급 출항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무장을 강화하고 경고사격을 준비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바다를 헤쳐가다 보니 제 머릿속 한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나간 시간, ‘살아간다는 것’의 기쁨을 만끽하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생의 기쁨이 머금은 가치를 왜 이럴 때야 체감하는지, 왜 죽음을 의식하면 의식할수록 기이하게 생을 향한 욕구가 솟아오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다행히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혹시 모를 또 다른 긴급 출항을 대비하며 낡아빠진 고속정 침대에서 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언젠가는 읽겠지 하면서 가방에 쑤셔놔 둔 ‘신곡’을 끄집어내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신곡 지옥편 1:1~3)

잠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전에는 희미하게만 보이던 별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같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신곡 천국편 33:142~145)

민경찬 편집장(비아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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