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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첨단 사회에서 바보로 살기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목사님, 요즈음은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시나요?” 하고 내가 물었다. “저는 계획하지 않습니다. 계획이란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인데 나는 미래를 모릅니다. 알지도 못하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합니까? 나는 패시브(passive)로 삽니다.” 관옥 이현주 목사와 나눈 대화다. 아주 오래전에 나눈 대화인데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것이 내게는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김동호 목사에게서 듣기도 했다. 그는 목회 초년에 1년 계획, 3년 계획, 5년 계획을 세우곤 했는데 얼마 후엔 그런 계획을 그만뒀다고 고백했다. “계획이란 것은 머리가 하는 것인데 나는 머리가 아닙니다”라는 그의 메시지가 지금도 가끔 뚜렷이 떠오르곤 한다. “도대체 대책이 뭐요?”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대책이 없는 것이 내 대책이요”라는 게 링컨의 대답이었다.

경북 포항 근처에 자그마한 신앙적 생활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몇 가정이 함께 살기 시작할 때 나도 늘 계획을 세우곤 했다. 협동농장은 어떻게 키워나가고 공동체는 어떻게 세워나갈 것인지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릴없이 주어진 여건 속에서 맡겨진 일을 그냥 해야 할 뿐이었다. 너무 힘들어 이젠 더 못하겠다고 생각할 즈음에는 이상하게 조그마한 희망이라도 가질 만한 일들이 생겨나 아직까지 계속해 오고 있다. 내 계획은 무너지고 사라져도 그 누군가의 계획이 계속 진행되는 것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는 사람은 이상한 겁니다.’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최근 뉴스 포털에 뜬 이 제목을 읽고 놀란 가슴에 그의 유튜브를 들어보니 지금의 젊은 친구들은 너무 계산을 잘해서 결혼도 출산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인간이 진화되는 과정에서 이제는 계산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현 상황이 결혼도 출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나치게 현명해진 세대, 너무 지나치게 똑똑해진, 계산을 할 줄 아는 세대의 불행”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문제를 분석할 뿐 아니라 해결책도 제시했다.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남성들이 변하라고 한다. 남자는 애를 낳는 것만 빼고는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데 여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고, 또 똑같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아이들이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기쁨이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기 때문에 여건만 조성이 되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다.

나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우리 학교는 결혼과 출산을 지원하는 센터를 설치해 그 인프라를 조성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아직 시작하는 단계지만 연애하는 학생들이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도록 돕고,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도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의식의 전격적 전환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학생들이 결혼해 부부가 캠퍼스에서 함께 살며, 아이를 데리고 교실에도 도서관에도 들락거릴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꿈꾸고 있다.

우리가 첨단 사회를 살아가면서도 한 가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인간에게는 계산을 초월할 수 있는 현명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진화라는 용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인간이 계산을 잘못하는 단계에서 계산을 잘할 수 있는 단계로 진화했다면, 그다음 단계의 진화는 계산을 초월하는 단계일 것이다. 그것이 영성의 단계이다. 예수처럼 계산을 잘못하는 바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인간 진화의 극치다.

유장춘 (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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