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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나를 위한 것이나 나의 것은 아닌

요조 가수·작가


오랜만에 전시를 보러 갔다. 이화여대 패션디자인 전공 학생들의 졸업전시회에 초대를 받았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한쪽에는 학생들이 만든 옷을 입은 모델들의 사진이, 다른 한쪽에는 마네킹에 입혀져 있는 실제 옷들이 전시돼 있었다.

내가 옷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잠깐 수영장에 다니던 두 달간이었다. 모두가 옷을 벗고 머리카락과 중요 부위만을 가린 채 돌아다니던 공간. 거기서 내가 입고 온 옷을 탈의실에 벗어 놓을 때 나는 마치 나를 벗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머리카락을 꼼꼼히 수영모 안에 욱여넣고 네이비색 수영복을 입은 채 거울을 보면 그 안에는 내가 아니라 잘못 만들어진 마네킹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내가 이 상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 가정을 하면서 쓸데없이 괴로워하기도 했다. 수영을 마치고 나서도 나는 로비에 앉아 수영장을 나서는 사람들을 자주 구경했다. 허전한 느낌의 사람들이 옷을 갖춰 입고 자기 자신을 되찾아 돌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언제나 다행스럽고 기분이 부쩍 좋아지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하던 것이 의복이 제거된 상태에서의 의복에 대한 사유였다면 이번엔 의복이 과잉된 상태에서의 의복에 대한 사유였다. 나는 그들이 만든 옷을 우러러보듯 바라보면서 옷이 얼마나 우리 자신이 아닌지를 생각했다. 그저 옷은 우리를 작게 구원한다. 펄럭이는 옷자락으로 우리의 걸음걸이를 더 멋지게 만들어주고, 꼿꼿하게 고정된 옷의 어깨가 우리의 구부정한 어깨를 대신해준다. 나라는 볼품없는 육신으로도 그래도 하루치 생의 의지라는 것을 품을 수 있도록 옷은 우리의 생활 속 빈틈에 복음을 전한다. 종종 온라인 옷쇼핑몰을 전전하면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더 근사하고 아름다운 옷이 아니라 그저 찾아 들어가 숨고 싶은 내 자존의 은신처였을 것이다.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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