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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의 민감한 영역, 세금
이·윤 정반대 방향 제시해
증세와 감세의 갈림길에 섰다

편 가르기 증세는 갈등 부르고
증세 없는 복지는 허상에 불과
사회적 공감대 필수적인
세금의 대원칙은 균형과 형평

성장과 복지, 빈부 계층 사이
적절한 균형점 찾아내는 후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세금 논쟁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노무현정부에서였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오랜 숙제를 마쳤더니 양극화가 찾아왔다. 부의 재분배를 통한 격차 완화 요구가 커졌고, 정부가 부응할 수단은 세금이었다. 한국인의 부가 집중된 부동산에 새로운 세금, 종합부동산세가 신설됐다. 정치인이 증세론을 펴는 것을 흔히 ‘악마와의 키스’라고 비유한다. 노무현은 용감한 대통령이었다. 집권 4년차 신년연설에서 “일자리와 사회안전망을 위해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며 증세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반대 여론이 거세서 1주일 만에 “세금을 더 걷지 않고 해보겠다”고 물러섰지만, 세금 인상 대신 집값 안정 프레임을 입힌 종부세는 위헌소송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이명박정부는 감세의 시대였다. 노무현정부에서 올린 종부세와 양도소득세를 원점으로 되돌렸고 법인세율을 대폭 낮췄다. 당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를 활성화해) 궁극적으로 세금을 더 받기 위한 정책”이라고 했는데, ‘부자 감세’란 꼬리표는 피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에선 ‘꼼수 증세’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워 당선된 터라 담뱃값을 올릴 때, 연말정산을 개편할 때, 건강보험료 체계를 바꿀 때처럼 세금 관련 정책을 꺼낼 때마다 꼼수라고 불렸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증세 효과를 내는 세액공제 연말정산을 “거위(납세자)가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살짝 깃털을 빼내는 것”이라고 설명해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거위 깃털 사태에서 보편적 증세의 어려움을 목격한 문재인정부는 집권 첫해에 초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높이는 슈퍼리치 증세를 단행했다. 대상이 국민의 0.08%뿐이라고 강조했다. 증세 대상자와 비대상자로 편을 갈라 조세저항을 넘어서는 전략은 부동산세제로 이어졌다. 고가주택·다주택을 겨냥해 양도·보유·취득세를 왕창 올렸고, 올해 종부세 고지서를 발송하면서 국민의 2%만 해당한다며 세금폭탄론을 반박했다. 0.08 대 99.92의 구분이 2 대 98로 확대됐는데, 사실 2%는 갓난아기까지 전 국민을 분모로 산출한 거라 통계의 왜곡에 가깝다. 성인, 가구주, 주택 보유자 등으로 분모를 바꾸면 이 세금의 영향 범위는 훨씬 넓어진다. 그래도 여당은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란 논평을 냈다.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세금이 집값 정책이 아닌 증세 정책이라고 의심받는 까닭은 보유세보다 양도세를 먼저 올렸기 때문이다.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집을 갖고 있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세금을 놔둔 채 팔기가 꺼려지는 세금부터 인상했다. 매물이 잠기니 집값은 더 올랐고, 그렇게 값이 폭등한 집마다 보유세를 대폭 높였다. 집값 안정에는 철저히 실패했지만 증세에는 완벽하게 성공한 정책, 엄청난 초과 세수를 안겨주면서 ‘K세금’이라 내세울 명분까지 있는 정책을 보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자신감을 얻은 듯하다. 악마와의 키스에 이렇게 과감히 도전하는 대선 후보가 또 있었나 싶을 만큼, 국토보유세 신설을 비롯한 증세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후보는 보편 증세와 부자 증세를 절묘하게 버무렸다. 땅 가진 사람은 누구나 토지세를 물리니 보편적 세금인데, 그걸 기본소득으로 나눠줘 실제 납세 부담은 상위 10%에 국한시킨다는 것이다. 문재인정부가 조세저항을 돌파한 노하우와 흡사하다. 0.08 대 99.92는 이제 10 대 90이 됐다. “세금을 더 걷어서 나눠주겠다”는 이 후보와 반대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세금폭탄 사슬을 끊겠다”고 말한다. 종부세를 전면 재검토하고, 양도세를 대폭 완화해 매물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는 “국민이 삶을 영위토록 국가가 인프라를 제공하고 그 유지비용으로 받는 것이 세금”이라고 말했다. 소극적인 세금관은 이명박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감세의 시대를 열려 하고 있다.

정치의 가장 민감한 영역인 세금을 놓고 여야 후보가 정반대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대선은 증세와 감세의 대결이라 불러도 좋겠다. 편 가르기를 통한 증세가 어떻게 사회적 갈등을 부르는지, 감세를 외쳤던 시절 복지재원 마련에 얼마나 허덕였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조세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균형과 형평인데, 양측의 간극이 너무 크다. 성장과 복지, 상·하위 계층 사이에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지점이 제시될 순 없는 것일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국민에게 던져진 선택지가 너무 극과 극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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