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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로케트 공업절’, 사기극 서막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 15형을 발사한 후 “오늘 비로소 국가 핵 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의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선포했다. 북한은 올해 11월 29일을 ‘로케트 공업절’로 적었다. 2017년 11월 29일은 북한이 펼친 거대한 사기극의 서막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은 ‘조선반도’ 평화를 위한 ‘조선반도’ 비핵화 가능성을 흘렸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면밀히 복기하면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가 정의하는 ‘북한 비핵화’에 한 번도 동의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상했다. 2017년 11월 29일 ‘핵 무력 완성’을 선포했지만 미사일이 완성되지는 않았다. 북한이 충분한 시험발사 없이 실전 배치하는 개발의 특이성을 인정하더라도 화성 15형은 항법 유도장치와 재진입 기술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서둘러 완성을 선포한 것은 두 가지 이유로 판단된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확실성이다. 북한은 ‘화염과 분노’로 몰아치는 트럼프에 긴장했다. 2017년 7월 북한 외무성 산하 미국학 연구소 박성일은 미국 기자를 초청하여 “(트럼프가) 이성적이지 않거나, 어쩌면 너무 머리가 좋은지도 모르겠다. 그의 다음 행보가 뭔지를 알아내야 하는데 너무나 어렵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북한은 트럼프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긴장하여 서둘러 핵 무력 완성을 선포하고 국면을 전환하려 했다.

둘째, 핵 능력을 일정 수준 확보한 북한이 미국과 비핵 협상이 아닌 핵 군축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이미 2009년 1월 17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제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조선반도의 현실이다. 관계 정상화와 핵 문제는 철두철미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있다면 조·미 관계 정상화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안전을 더욱 믿음직하게 지키기 위한 핵 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하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핵 문제와 대미 관계를 분리하여 접근하되, 핵 포기는 없다는 것이다. 2018년 1월 김정은이 발표한 신년사도 “그 어떤 힘으로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릴 수 없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을 보유했다면서 비핵 협상이 아닌 군축 협상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1991년 북한도 동의했던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인용하면 북한은 핵무기 시험·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을 금지해야 한다. 그러나 2018년 전개된 4·27 남북 판문점 선언, 6·12 북·미 싱가포르 공동성명, 9·19 남북 평양공동선언을 보면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고만 밝히고 있다. 2018년 12월 20일 북한이 직접 밝힌 것처럼 “ ‘북 비핵화’라는 문구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북한이 밝힌 조선반도 비핵화의 정의는 “우리의 핵 억제력을 없애기 전에 조선에 대한 미국의 핵 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는 확장억제를 우선 폐지, 즉 무장 해제하라는 것이다. 나아가 주한미군 철수와도 연계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9년 10월 스톡홀름 회담을 마지막으로 북·미 협상이 중단된 직후 12월 북한은 전원회의를 통해 “미국의 제재 봉쇄책동을 총파탄” 내는 ‘정면돌파노선’을 채택하고, 올 1월 8차 당대회에서 다시 한번 ‘핵보유국’임을 선포한다. 그간의 노력을 ‘사기’라고 비판하면 북한은 한 번도 속인 적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북한의 사기에 누가, 왜 의도적으로 혹은 순진하게 당한 것일까? 그리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것일까?

박원곤(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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