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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여자로 불릴 때

이영미 영상센터장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최근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SNS에서 페미니즘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장 의원이 여자친구를 19층에서 떨어뜨려 살해한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세상에서 여성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고 하자 이 대표는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스테레오타이핑과 선동’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장 의원 발언을 조선인 우물 수준의 ‘잠재적 남성 가해자’ 프레임이라고도 했다. 우물 독살설로 조선인 대량 학살을 유도한 일본 극우처럼 페미니스트들이 남성 전체를 차별한다는 주장이었다. 장 의원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반박도 자유다. 그래도 조선인 우물이라니.

장 의원이 페미니즘을 말한 건 연애와 관련된 ‘교제살인’에서 성별이 사건을 파악하는 핵심 요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보자면 사실이다. 교제살인은 가해자와 피해자 성별이 완벽히 갈리는 범죄 유형이다. 지난해 한 보도에 따르면 2016~2018년 판결문으로 확인한 110건의 교제살인 중 남성이 여성을 죽인 사건이 108건, 반대는 2건이었다(‘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 중). 피해자 연령은 20~70대였고, 절대다수(95명)는 가해자 남성과 단둘이 있을 때, 절반(53명)은 목이 졸리거나 폭행으로 죽었으며, 가해자 대다수는 피해자의 거주지·휴대폰·직장 등을 알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교제살인을 주차 시비처럼 전조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우발 범죄로 여긴다. 하지만 숫자는 다른 얘기를 한다. ①교제라는 친밀한 관계에서 ②피해자의 모든 정보가 노출된 가운데 ③장기간 남성의 반복된 폭력이 ④남녀 간 압도적 물리력 차이에 의해 ⑤여성의 목격자 없는 죽음으로 귀결되는 게 평균의 교제살인이다. 전조는 넘쳤다는 얘기다. 통계가 그려낸 교제살인은 남녀의 불균등한 역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가해자, 여자는 피해자로 태어났다거나 이런 구도가 필연이라는 뜻이 아니다. 성별 분석의 목표는 하나. 사건을 이해하고, 원인을 찾고, 결국에는 범죄를 막는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교제를 범죄로 접근하는 시선이 불쾌할 수 있다. 낭만적 로맨스를 걷고 남녀관계의 리스크를 논하는 건 우리 사회가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연애는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완벽하게 사적인 과정이다. 가정폭력이 집안일로 취급됐듯 폭력적 연애도 좋은 연애를 찾기까지 불운한 개인이 치러야 하는 사적 비용으로 치부돼 왔다. 교제살인은 연애의 진짜 위험을 드러냈다. 연애는 남녀 모두에게 도박이다. 하지만 극단적 사례에서 목숨으로 값을 치른 건 여자들이었다.

어떤 연애가 위험하다고 연애를 부정할 수는 없다. 남성 전체를 범죄자 집단 취급하자는 것도 아니다.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부모 교육을 하자는 게 부모 집단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아니듯 말이다. 친밀한 연애관계는 종종 폭력적으로 변질된다. 그걸 인정하고 공동체가 개입할 가능성을 폭넓게 열어두자는 거다. 갈등이 죽음으로, 학대가 살인으로 끝나기 전에 가해자를 제지할 수 있도록 인신 구속의 길을 넓히고, 피해자에게는 탈출을 돕는 지원 제도를 준비하면 된다. 그러면 희생을 줄일 수 있다.

비슷한 시기 벌어진 인천의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에서는 여경 무용론이 들끓었다. 여자의 무능이냐, 경찰의 무능이냐 논란이 거셌다. 여자라는 게 강조되는 건 언제일까? 여경논란처럼 책임질 땐 빼고 교제살인처럼 보호할 때만? 내 생각은 다르지만 당분간 논란은 피할 길이 없을 것 같다. 긴 논쟁 앞에서 한 가지는 짚어두고 싶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목표는 하나. 문제를 이해하고, 원인을 찾고, 결국 해결하는 것. 제1야당 대표가 아니어도 누군가와는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답을 찾는 게 가능할 거라 믿는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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