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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왕릉뷰 아파트와 시민권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왕릉의 전망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가 골칫거리다. 문제가 불거진 지 석 달이 지났지만 마땅한 해결책 없이 명분과 현실이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가치 있는 문화재를 그 자체뿐 아니라 경관도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재청의 주장은 타당하다. 다른 왕릉과 함께 등재돼서 경관이 훼손되면 조선 왕릉 전체의 등재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시공사와 입주 예정인 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왕릉에서 수백m나 떨어져 있고 주산인 계양산을 바라보는 경로에 더 높은 아파트가 이미 있다는 것이다. 행정기관의 건축 허가를 얻고 시작한 공사인데 골조 대부분이 완성된 지금에 와서 허물라는 통보는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이 또한 일리가 있다.

평소 같으면 조건반사적으로 문화재청을 편드는 멋지고 고고한 입장을 택했겠지만 여러 단편적 생각이 순서 없이 떠오른다. 생각들은 때로는 서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첫째는 미국 뉴욕의 비슷한 사례다. 1991년 4월 뉴욕의 한 부동산회사는 31층 건물 중 12개 층을 철거하라는 법원의 결정을 수용하는 사건이 있었다. 완공 후 5년간 입주도 하지 못하고 대치하던 끝에 나온 결정이었고 대규모 사례였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미 행정절차가 끝났다는 주장과 도시계획지도 해석에 오류가 있었다는 지적이 대치한 결과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부동산회사가 임대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입주자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반대 청원을 주도한 것은 ‘키비타스 뉴욕’이라는 시민운동단체였다. ‘뉴욕 시민의 권리’쯤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체다. 도시 환경을 유지하고 보호한다는 취지로 결성됐고 유명 영화배우 폴 뉴먼도 주요 활동가 중 하나였다. 이들은 저층고밀 즉 5~6층 높이의 1층엔 상가가 연속된 기존 환경에 고층저밀의 아파트 건물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높이를 확보하기 위해 기존 건물 선에서 물려서 정원을 만들고 고층 건물을 세우는 것은 불임과 불모의 건축이며 약탈적이라고 단언한다. 공동체에 대한 기여는 없고 거리에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는 등 해악만 끼치면서 도시의 편익과 혜택만 취한다는 것이다. 단체가 주장하는 주요한 시민의 권리는 도시 경관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원이나 문화재 주변의 현대 건축이 해롭다는 주장이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처럼 너무나 당연해 반박할 수 없지만 현대 건축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처지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왕릉뷰 아파트의 경우는 경관 자체가 중요한 사례이므로 예외적이기는 하지만 공원이나 문화재 주변의 건축 심의에서 고층 건물은 필요악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깎아지른 절벽에 위태롭게 홀로 서 있는 건물이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것처럼 자연과 건축은 때로는 강한 대비를 통해 조화로운 경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고건축 주변에 초현대적 고층 건물을 조화롭게 지은 사례도 무수히 많다. 건물군이 도열해 뉴욕 센트럴파크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주거문화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작 200%도 되지 않는 용적률을 위해 20층 이상 건물을 짓는 현실은 되돌아봐야 한다. 고층저밀의 아파트는 바로 뉴욕 시민들이 불임이며 약탈적이라고 비난하고 저지했던 건축 형태다. 이런 건물이 단지로 모여 있으니 폐해 또한 더 클 수밖에 없다. 고층 주거단지는 공동체가 해체되는 ‘비장소’ 현상의 대표 사례로 떠오를 만큼 경관 말고도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선거를 거치며 더 높게 더 많이 지어질 전망이다.

여러 생각은 시원한 해답보다는 혼란스러운 의문만 남겼다. 거리를 걷거나 운전하며 마주하는 일상의 경관은 무시할 만한가? 왕이 아닌 시민의 권리는 어떻게 찾고 주장해야 하는가? 정말로 자연과 문화재 가까이 짓는 현대 건축은 담배처럼 해로운가?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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