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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

정지우(문화평론가·변호사)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수개월간 슬픔에 빠져 일기를 쓴다. 그게 출간된 것이 ‘애도일기’다. 아래 구절은 홀로 남겨진 바르트가 상상 속의 어머니를 만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메모처럼 끄적인 것이다. “어느 때는 그녀가 내게서 모든 것을 원한다. 완전한 슬픔을, 슬픔의 절대치를(그런데 그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 슬픔의 절대치를 원하는 건 그녀가 아니다. 그건 그녀가 그걸 내게 원한다고 상상하는 나다). 그런데 다른 한편 그녀는 내게 모든 일들을 가볍게 받아들이라고, 그렇게 살라고 충고한다(이럴 때 그녀는 정말 어머니가 된다).”

어느 날 상상 속 어머니는 그가 완전히 슬픔에 빠져 있기를 원한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다시 행복해서는 안 된다. 계속 우울에 빠져 있어야 한다. 어머니를 잊고 새로운 기쁨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상상하는 어머니일 뿐이다. 반면 그는 알고 있다. 만약 진짜 어머니라면 그에게 슬픔에 빠져 있기보다는 새로운 행복을 찾아 여전히 남은 생을 기쁘게 누리라고 말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머니는 결코 그가 우울함에 빠져 있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아들과 어머니의 이별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이별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다.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반려견이든 진심으로 사랑했던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필연적이다. 인생에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 누구도 이별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이별은 삶에서 상처라고 생각한다. 버림받거나 실패한 기억이며 상실의 아픔일 뿐이라 믿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별을 보다 온전히 대한다면 그 이별 속에서 삶의 진짜 힘이라는 걸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바르트가 ‘진짜 어머니’의 말을 상상하는 그 순간처럼 우리도 이별이 건네는 말을 상상할 수 있다.

비록 안 좋게 헤어진 연인일지라도 사랑했던 순간만큼은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에게 깃들어 있었던 다정함, 서로에 대한 응원, 함께 나누며 치유했던 상처의 기억은 우리 삶의 둘도 없는 보물이다. 그리고 이별 이후에는 우리 ‘머릿속’ 또는 ‘상상’ 속의 그 사람이 남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우리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상상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내게 주었던 진심 위주로 말이다.

모든 이별은 어렵다. 그 이유는 이별이란 내가 쌓았던 시간과 작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별 이후에 살아야 할 시간이 막막하거나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르트 또한 오랫동안 어머니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새로운 삶으로 가길 두려워했다. 새로운 삶을 기쁘게 누린다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배신인 것만 같아 그러지 못했다. 그러나 한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그 모든 건 우리 마음속의 일일 뿐이다. 현실은 우리 앞에 눈부시게 펼쳐진 삶, 여전히 똑같이 도래하는 오늘들이다.

그래서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가 있다면 결국 두 가지로 수렴될 것이다. 하나는 이별 속 남겨진 그 사람이 내게 주었던 것들을 위주로 상상할 것. 무언가 잃었다기보다는 선물을 받았다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 우리는 그런 상상 안에서 또 앞으로 살아갈 힘을, 누군가를 다시 만날 마음을 얻는다. 두 번째는 이별 이후의 삶을 받아들일 것. 매일 오늘이 새로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믿을 것. 오늘 내게 놓여 있는 이 삶과 세계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만이 내게 주어진 의무임을 믿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우리를 가장 사랑했던 순간, 그가 바랐던 것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행복하기를, 삶을 사랑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리도 그 누군가가 그러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지우(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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