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풍경화] 詩 옮기는 편의점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편의점 창가에 시(詩)나 격언을 붙여놓은 적이 있다. 좋아하는 시를 가지런히 출력해 붙이거나, 직장인 손님이 많은 편의점이다 보니 삶에 용기를 주는 문장을 골라 곁에 두기도 했다. 하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낼 적엔 언제나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든다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한 사람이 떠났는데 서울이 텅 비었다는 문정희의 ‘기억’ 같은 시가 그 선택의 결과였다. 격언은 인터넷에서 찾은 그럴듯한 말이었는데, 구체적으로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쨌든 편의점 시식대에 앉아 컵라면 먹으면서, 삼각김밥 비닐포장 뜯으면서, 잠깐 쓸쓸하지 말라고 붙인 나름의 여유 한 조각이었으니, 누구에게 도움이 됐는지 몰라도 내 마음은 뿌듯했다.

편의점 한쪽 벽이 좀 휑해 커다란 현수막을 붙여놓은 적도 있다. 거기에도 시를 적었다.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김경미, ‘비망록’)를 골랐던 적도 있고, 폴 발레리 잠언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발레리, ‘해변의 묘지’)를 프랑스어까지 덧붙여 걸었던 적도 있다. 편의점에서 읽기엔 좀 묵직한 내용이지만 어설픈 ‘중년 사춘기’에 들떠 고른 것 같다. 우연히 맡게 된 음악 카페에서 오래된 LP판을 들추는 기분으로.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손편지도 많이 썼는데, 손발 오글거리는 추억이긴 하지만 끝자락엔 종종 시를 옮겨적곤 했다. 푸시킨의 ‘그대를 사랑했다오’, 도종환의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고 당시 유행한 원태연 시집 등이 내 불법(?) 복제의 단골 메뉴였다. “심장에 이글대는 뜨거운 무엇을 말로 표현할 수 없어 이렇게 시로 대신한다”는 역시 온몸 오그라드는 ‘퉁치기’ 수법이었거나, 편지를 좀 두툼하게 만들어보려는 알량한 꼼수였으리라. 어쨌든 그 시절 베껴 쓴 시는 세월 지나도 기억에 남았는데, 편지의 수취인이었던 긴 머리 소녀들은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는다. 쉿, 아내가 이 글을 보고 있다.

가을이 저문다. 벌써 달력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한숨을 쉬고, 내년 지나면 나이 앞자리가 바뀐다는 생각에 ‘어휴…’ 하고 또 길게 한숨을 뱉는다. 어설픈 중년 감성에 젖어 편의점 모퉁이에서 시집을 뒤적인다. 한때는 ‘사랑’ ‘그대’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으나 지금은 ‘인생은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이라는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이가 됐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므로 너는 아름답다”(심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는 구절에 용기를 얻는 계절이 됐다.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대로 있으면 가을”이라고 어느 시인은 말했는데(김대규, ‘가을의 노래’), 가을 아니라도 뭔가를 자꾸 잊는 나이가 됐다.

내년 편의점엔 무슨 시를 옮겨볼까? 생각해보니 지금 유리창에 붙은 글귀가 3년째 그대로다.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 놓고 내 소녀는 어디 갔느뇨”(오일도, ‘내 소녀’)로 바꿔볼까 하는데, 이것도 과연 아저씨스럽군.

봉달호 작가·편의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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