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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문구 삭제 등 성경·찬송가 왜곡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 신사참배] <9> 신사참배 이후의 배도들 ②

1943년 4월 11일 대구신정장로교회 주보. 신사참배 결의에 따라 궁성요배, 대동아전쟁필승기원묵도, 황국신민서사계송, 우미유가바(일본 군가) 합창 순서가 포함돼있다. 최덕성 교수 제공

신사참배의 배도는 예배에서도 이루어졌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일제는 가미다나라는 간이 신사를 각 교회당 안에 설치한 것도 모자라 예배 순서마저도 신도의식을 포함하도록 변경했다. 이 일은 교단 총회 행사뿐 아니라 개 교회 예배 때도 동일하게 시행됐다.

주일예배는 먼저 1부 순서로 신도예배가 행해지고, 그 뒤 2부로 기독교 예배가 행해졌다. 신도예배는 국민의례라는 명분으로 행해졌는데, 국가봉창 궁성요배 대동아전쟁필승기원묵도 황국신민서사계송 우미유가바(일본 군가) 합창 순서로 진행됐다. 이런 의식을 매 주일예배 시간에 시행한 것이다. 이것이 과연 하나님을 위한 예배인가, 천황을 위한 예배인가.

또한 한국교회는 일제의 지도에 따라 성경과 찬송가마저 왜곡했다. 일제는 1940년 ‘기독교에 대한 지도 방침’을 통해 성경과 찬송가 내용을 국가 신도의 내용에 맞추어 수정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자 장로교와 감리교 지도부는 각기 ‘혁신요강’ 혹은 ‘혁신조항’을 만들어 찬송가를 수정했다.

이에 따라 천황의 권위를 하나님보다 더 높이기 위해 “왕, 임금, 다스리시네” 등 하나님의 통치권과 관련되는 단어는 ‘주님, 보살피시네’ 등으로 용어를 바꾸었다. 그리고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과 같은 민족적 의식을 고취하는 찬송, ‘십자가 군병들아’와 같은 전투적인 내용의 찬송은 아예 삭제했다.

성경도 모세오경을 포함한 구약성경이나 요한계시록과 바울서신 등은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와 해방의식, 종말의식을 표현하고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그리고 설교 본문은 사복음서로만 제한됐고, 설교자는 설교의 주제를 사전에 당국에 보고해야 했고 내용도 엄격히 통제됐다.

또 사도신경 가운데서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옵고’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와 같은 조항들은 삭제되었다. 하나님을 창조주와 심판주로 고백하는 것은 천조대신을 최고 신이자 창조주로 묘사하는 신도의 신화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일점일획이라도 변경해서는 안 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일제의 지도에 따라 말씀을 변경하고 찬송가를 임의로 수정해 버린 것이다. 변질된 것은 성경과 찬송가뿐이 아니었다. 기독교 진리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할 신학교마저도 변질하여 오히려 정통 기독교를 왜곡시키는 도구가 돼버렸다.

1938년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정이 나자, 이에 불복한 평양신학교는 자진 폐교를 결정했다. 그러자 그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1939년에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조선신학교가 서울에 설립됐다. 이 신학교는 처음부터 친일적인 기조를 유지했으며, 일본식 기독교 교사를 양성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한편 장로교 총회의 결정으로 1939년 평양신학교가 재건됐다. 그러나 이 신학교는 폐교된 평양신학교의 전통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후평양신학교’라 불렸다. 이 신학교 역시 그 목표가 목사 양성이 아니라 정통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자들을 일본 민족주의 정신으로 개종시킬 교회사(敎誨師·지난날의 잘못을 깨우치게 하는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일본식 기독교 사역자 육성이었다.

감리교신학교는 한술 더 떠서 교명을 황도정신교사양성소로 바꾸어 교명에서 신학교 색채를 아예 제거했다. 강의 내용도 모세오경이나 바울서신, 예언서 같은 과목은 없애는 대신, 일본 종교인 신도학(神道學), 신도 역사, 유교학, 불교학, 교련 등 새로운 과목을 추가함으로써 이 학교가 기독교 신학교인지 신도 신학교인지 구분이 안 되도록 만들었다.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 가르쳐야 할 신학교가 오히려 기독교 신앙을 왜곡시키는 도구로 변질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교리적인 측면에서뿐 아니라 또한 민족의 관점에서도 큰 오점을 남겼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총독부는 침탈 전쟁을 위한 기도운동과 선동운동에 교회가 앞장서도록 했다. 이에 따라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가 앞장서서 일본에 충성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채필근 목사와 같은 사람은 “국민정신총동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때 종교인도 국가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것을 이단이라고 하는 자야말로 오히려 이단”이라고 강연했다. 또 복음교회 최태용 목사는 “조선을 일본에 넘긴 것은 신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을 섬기듯 일본 국가를 섬겨야 한다”라고 강연했다.

이런 식으로 1937년 7월부터 1940년 8월까지 장로회 총회 연맹에 보고된 장로교의 선무활동만도 전승축하회 594회, 무운장구기도회 9053회, 시국강연회 1357회, 위문 181회나 됐다.

그러므로 신사참배는 단순히 신사에 가서 절한 정도의 의례가 아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이방 신도 섬겼던, 저 사사기 시대와 같은 배도 행위였다. 이런 배도를 무려 7년간 전 한국교회가 저질렀으니 이 얼마나 큰 죄인가.

오창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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