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근대 개신교 문화 유산 다 어디 갔나

역사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박준서 연세대 명예교수가 보관 중인 알렉산더 피터스 목사의 생전 설교 노트.

“이번 정류장은 종로5가·효제동·김상옥 의거 터입니다.”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한국기독교회관 등 국내 기독교 관련 주요 단체와 기관이 모여 있는 서울 종로5가역 인근으로 취재를 나갈 때면 수없이 들었던 버스 정류장 안내방송이다. 최근 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흘려들었던 ‘김상옥 의거 터’의 주인공 독립운동가 김상옥(1889~1923) 이야기를 접했다.

그는 일제 치하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고문하고 탄압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등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개신교 신자로도 알려진 그는 영화 ‘암살’과 ‘밀정’에서 각각 배우 하정우와 박희순이 연기한 인물의 모티브가 됐다는 사실로도 유명하다.

앞서 언급한 정류장 뒤편으로 난 외딴 골목으로 들어서면 김상옥 의사가 일본 경찰과 맞서다 최후를 맞이한 집이 있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이지만, 길을 지나는 누구도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그곳엔 안내 표지석 하나 없었다. 그저 이곳에서 2㎞ 남짓 떨어진 종각역 8번 출구 앞에 조그맣게 ‘김상옥의거표지석’이 홀로 놓여 있을 뿐이다.

김상옥 의사의 손자는 당시 방송에서 “‘선대들이 여기서 이렇게(순국) 한 현장이다’고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곳이 돼야 하거든요”라며 “장소 보존을 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속상하죠”라며 울먹였다.

이날 방송을 보고 2019년이 떠올랐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그해 한국교회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취재하기 위해 인천 강화도를 찾았다. 100년 전 3·1운동의 불씨는 강화지역에서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취재하던 중 길상면에 있는 선두교회의 황유부 전도사 집에서 독립선언서 수백장이 비밀리에 인쇄됐다는 사실을 접했다. 당시 독립선언서를 인쇄했다는 등사기가 보존돼 있을까 싶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교회를 찾았다. 헛수고였다. 교회 터와 기념비는 남아있을지언정 등사기까지 보존돼 있을 리는 만무했다. 아쉬움으로 가득 찼던 기억이 난다.

그 아쉬움은 최근 한 노교수를 만나며 다시 갖게 됐다. 여든이 넘은 그는 한글 구약성경을 최초로 번역했다는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1871~1958) 목사의 업적을 기리고 알리는 사역을 펼치고 있었다. 그 역시 역사를 보존하고 알리는 데 있어서 한국교회의 한계를 아쉬워했다. 그는 피터스 목사의 사역을 도운 장로나 평신도들의 행적은 물론이거니와 피터스 목사의 사역조차도 기억하는 이도, 그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그는 어렵게 구한 피터스 목사의 생전 설교 노트를 이중삼중으로 고이고이 포장해 들고 다니며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알리며 지켜나가고 있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란 유명한 말이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지만, 역사를 잘 보존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도 있다. 승자에 의한 역사 왜곡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이 말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훗날 한국 개신교의 역사도 객관적 사실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입맛대로, 이권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되고 변질시켜 결국엔 잊힐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나마 최근 한국교회가 개신교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사업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개신교 연합기관 한국교회총연합은 올해부터 3개년 계획으로 한국의 근대 기독교 문화자원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흩어진 개신교 자원을 한곳에 모아 이를 데이터베이스화해 그 가치를 연구, 보존할 계획이란다.

여의도순복음교회를 필두로 한 한국기독교역사문화재단도 2024년 건립을 목표로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일대에 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어딘가에 홀로 방치된 채 끊임없이 현재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개신교 역사의 대화 요청에 응답할 때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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