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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기 보급률 日·유럽보다 높은데… 왜 부족해 보일까

한국, 충전기 1기당 2.18대 충전… 영국·독일·일본 등은 10대 이상
설치 지점과 실제 이용지역 간의 미스매치가 충전불만 주된 이유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국내에 20만대의 전기차가 새로 등록됐다. 2017년 말 2만5000여대와 비교하면 4년 사이 10배나 늘었다. 얼핏 보면 엄청난 숫자지만 사실 올 3분기까지 전체 자동차 신규 등록대수에서 전기차의 비중은 0.8%에 불과하다(친환경차 4.3%). 여전히 자동차를 새로 구입하는 운전자 대부분은 내연기관차를 선택한다.

왜 전기차는 외면받을까. 구매를 망설이는 배경에는 비싼 가격도 있지만 ‘배터리 충전 불안’도 크다. 내연기관차처럼 아무 때나 충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모빌리티 플랫폼 쏘카가 지난 9월까지 쏘카 전기차 충전데이터 약 4만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기차 이용자들의 충전 불안이 내연기관차 이용자보다 컸다. 전기차 이용자들은 배터리가 평균 42.7% 남았을 때 72.1%까지 충전한 반면 내연기관차 이용자들은 연료가 평균 27.8% 남았을 때 86.9%까지 채워넣었다.


3일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으로 전국에 보급된 전기차 충전기는 9만9622기(급속 1만4190기, 완속 8만5432기)다. 현재까지 보급된 전기차가 21만7537대임을 고려하면 충전기 1기당 2.18대를 충전할 수 있다. 집계 시점이 지난해이거나 올해 초인 경우가 많아 비교가 어렵지만 충전기 1기당 10대 이상의 전기차를 충전해야 하는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 비하면 한국의 충전기 보급량은 부족하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전기차 이용자들은 여전히 충전 인프라 부족을 호소한다. 숫자와 현실 간 괴리에는 ‘비밀’이 있다.


전문가들은 충전기 설치지점과 실제 이용지역 간 ‘미스매치’, 한국의 주거형태, 충전기 관리 및 네트워크 구축 미비, 이용자들의 성숙하지 못한 이용습관 등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라고 진단한다. 가장 큰 문제는 적재적소에 충전기를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그래픽 참고). 그래서 ‘충전기 1기당 전기차 2.18대’라는 수치는 무색해진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양적 팽창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우리나라는 도심지의 약 70%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집단거주를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아파트 공용주차장에 충전기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면 전기차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 이런 특징을 반영한 ‘한국형 선진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설치한 충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나머지 유지·보수를 소홀히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일본은 충전기가 수만기에 이르는데, 고장난 게 하나도 없다. 민관 구분 없이 고장난 충전기를 고치고 입증하기만 하면 정부에서 비용을 지급하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중앙정부가 별도로 관리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충전소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것도 인프라 부족을 촉발한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국토 면적이 작고 평야 지역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네트워크 구축이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근 충전소의 이용 현황과 충전기 고장 여부, 내 차에 맞는 충전소 추천, 충전소 간 통합플랫폼 구축 등이 전기차 이용자들의 충전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기차 이용자들의 성숙한 충전 에티켓도 필요하다. 이 연구위원은 “충전이 끝났으면 빠르게 자리를 정리해주거나 충전 위치에 주차하지 않는 등 기본적인 충전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배터리를 무조건 100% 충전하기보다는 휴대폰처럼 중간중간 충전하며 사용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기차 이용자가 늘고 충전 인프라 지적이 커지자 완성차 업체들이 충전소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초부터 초고속 충전소 이피트(E-pit) 운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29일 운영을 시작한 국립중앙과학관(대전)을 포함해 도심에 총 9곳의 충전소를 운영할 계획이다. 최근엔 전기차 충전사업자 6곳과 통합 충전플랫폼 구축을 위해 ‘이피트 얼라이언스’를 결성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충전소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자동차와 충전소는 실과 바늘의 관계다. 전기차산업은 전기차만 생각할 게 아니라 여기에 이용될 전기에너지를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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