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란 상식을 벗어난 기이하고 놀라운 일이다. 쉽게 말해 일상에선 일어날 수 없는 신비한 일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신비와 기적은 모든 종교에서 지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라서 종교인이라면 누구나 이런 신비와 기적을 원한다.

기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치유 방언 예언 등 성경 곳곳에는 신비한 기적 이야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기독교가 추구하는 신비는 남다른 구석이 있다. 일상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신비와 기적 대신 ‘일상 속에 들어온 신비’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 사건만 해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이 적은 식량으로 오천명을 먹였다며 그 기적을 환호하겠지만, 성경을 찬찬히 읽어보면 꼭 그렇지 않다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태복음을 예로 들면 오병이어 사건 다음에 칠병이어 사건이 뒤따라 나온다. 상식적으로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였으니 그다음 칠병이어로는 칠천명쯤 먹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오히려 숫자가 줄어든다. 원재료가 많아졌으니 기적의 수혜자도 늘어야 맞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한데 오병이어와 칠병이어 사건은 신비와 기적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복음서엔 도리어 눈에 보이는 기적과 신비를 좇지 말라는 메시지가 숨겨 있다.

상식선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오병이어는 평범한 사람이 여행하며 가지고 다녔던 일종의 도시락이라고 할 수 있다. 뭐하나 대단한 것도 기적을 일으킬 특별한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여행자의 도시락이다. 제자들이 이걸 하찮게 여긴 이유도 이해할 만하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고작 그걸로? 군중의 식사로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웃어넘겼다.

제자들은 일상에 이미 주어진 것의 소중함, 일상의 가치를 보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에게 주어진 일상의 것, 오병이어 도시락을 가져오라’고 명하신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감사한 다음, 그 일상에 주어진 것을 ‘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 감사의 자리에 드디어 기적이 일어난다.

그리스도인으로, 교회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오천명 먹을 것을 빼앗아 게걸스레 혼자 먹어치우는 삶이 아닌, 흔하디흔하고 작디작은 일상을 귀하게 여기며 오천명과 함께 나누는 삶, 이것은 무언가 특별하고 신비하고 기적적인 것을 쫓아다니며 사는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늘이 내게 주신 일상 속에 신비와 기적이 깃들어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일의 놀라움에 눈이 가려 흔히 보는 일의 놀라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면 좋겠다. 일확천금과 대박의 꿈 대신, 밥 한 공기 속에 무한한 우주가 담겨 있음을 깨닫고 매일 걷는 평범한 길 아래 보물이 감춰져 있음을 알고 오늘 걷는 길을 소중히 여기는 삶,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오늘 만날 그 사람, 오늘 아침 마실 진한 커피 한 잔 속에서 새롭고 감동적인 신비를 발견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한 달 남짓 성탄이 코앞에 다가왔다. 이번 성탄은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소소한 일상을 감사하는 성탄, 거리두기로 소원해진 우리 주변을 살뜰히 챙기며 나누는 따스한 시간이 되면 좋겠다. 나눔의 기적과 일상의 신비가 우리 삶에 가득하길.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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