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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현장은 아우성인데…


서울 주요 대형병원들의 응급실 앞에 예전엔 보지 못했던 긴 줄이 생겼다. 사고,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 응급질환부터 단순 발열, 호흡 곤란 환자들까지 뒤섞여 3~4시간씩 대기 순번을 기다린다. 코로나19 검사와 거의 꽉 찬 음압격리병상으로 응급실 진입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응급환자를 내려놓고 금방 빠져나가야 할 119구급차들은 환자를 실은 채로 마냥 머물러 있다. 일부 구급차는 위급한 환자를 태우고 계속 병원 주변을 맴돈다. 코로나 여파로 진짜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살얼음판 같은 상황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코로나 위중증 환자가 연일 최고치를 찍으면서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의 중증 병상은 거의 소진됐다. 일부 환자는 입원 병상을 찾아 아무런 연고가 없는 지방 병원으로 보내지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확진자와 중증 환자가 급증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새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까지 유입돼 확산될 경우 상황은 더 나빠질 게 뻔하다.

의료의 총체적 위기임에도 정부는 일상회복의 일시 멈춤 카드를 꺼내들지 않고 있다. 몇 달 만에 열린 청와대 특별방역대책점검회의에서는 코로나 확산세와 중증 환자·사망자 증가세를 꺾거나 응급실 부담을 덜어줄 특단의 대책이 없었다. 대통령은 강한 어조로 “위드 코로나 후퇴는 없다”고 했고, 방역 당국은 모든 확진자의 재택치료 원칙과 백신 추가 접종 방안만 발표했다. 일상회복을 되돌리는 것을 정책 실패로 받아들이기 때문인가. 대통령이 나서 ‘후퇴는 없다’고 못 박으면 방역 당국의 보폭은 좁아지고 정책의 유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식당·카페 영업시간 제한, 사적모임 인원 축소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수도권만이라도 비상계획(서킷브레이커) 발동을 촉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계속 미적거리고 있다. 방역 당국이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며 제시한 비상계획 발동 기준(중증 병상 사용률 75% 이상)을 이미 넘어섰지만 따르지 않고 있다. 백신 추가 접종이나 취약시설 보호 등도 비상 조치라는 해명은 궁색하다.

일각에선 방역 당국의 현재 위상을 보여준다는 얘기도 나온다. 방역의 중심이 질병관리청이라고 하지만 의사 결정이 위로 올라가면서 정책은 반토막이 돼 간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의 고통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특정 부류의 눈치를 너무 보는 거 같다”고 했다.

당국은 1단계 일상회복 조치를 4주간 연장했다. 확진자와 중증 환자 증가의 파편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의료 현장에 “이대로 4주간 더 버텨라”고 한 거나 다름없다. 지난 2년간 국민과 함께 방역 현장을 힘겹게 지켜온 의료계에선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SNS에는 “중증 병상이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진다”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조각배 타고 바라보는 심정이다” 같은 한탄과 성토가 이어졌다.

급기야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으로 5000명, 위중증 환자는 700명을 넘어섰다. 자영업자와 국민의 양해를 구해서라도 일상회복을 일시 중단하고 급한 불을 꺼야 할 시점이다. ‘마른 오징어에서 물 짜내듯’ 하는 중증 병상 추가 확보에도 한계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증 환자만 치료하는 의료기관이나 체육관 등에 중증 치료 장비를 갖춘 임시 병원을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냥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어떤 정책이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재난 상황에서는 그 ‘시기’라는 것이 더 큰 의미를 지니고 결과를 크게 바꾸기도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얘기는 재난 상황에서 통하지 않는다. 늦었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늦은 것이다. 지금이 잠시 멈춰서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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