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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소련 붐’과 ‘러시아 시즌’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2020년은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지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양국은 2020~2021년 한·러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정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2021년 한국에 집중적으로 들어올 예정이던 러시아 예술단체의 내한은 모두 취소됐다. 백신 접종과 함께 올 하반기부터 여행단체의 국가 간 이동이 재개되자 러시아는 지난 10월 2일 비올리스트 겸 지휘자 유리 바슈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의 공연으로 ‘러시아 시즌’을 개막했다. 그리고 러시아 시즌의 일환으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스트라디바리우스 앙상블의 내한이 이뤄졌으며, 대문호 톨스토이의 동상이 서울 남산 문학의집에 세워졌다.

러시아 문화부가 주관하는 러시아 시즌은 자국의 문화예술을 해마다 특정 국가에서 선보이는 페스티벌이다. 세계적으로 뛰어난 기량의 예술단체의 순회공연과 대규모 전시회, 영화 상영 등이 펼쳐진다. 2017년 일본에서 처음 열린 이후 2018년 이탈리아, 2019년 독일, 2020년 프랑스·벨기에·룩셈부르크 3개국에서 열렸다. 그런데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러시아 시즌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코로나 여파로 개최 자체가 급하게 결정된 데다 기간도 짧고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가격리 문제로 예술단체의 내한이 급박하게 결정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이야 러시아 예술단체의 내한이 흔하지만 옛 소련과 수교하기 전까지는 그저 ‘경원’의 대상이었다.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소련과 수교를 계획했던 한국 정부는 예술 교류를 먼저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88년 9월 볼쇼이 발레단의 첫 내한공연이 성사됐다. 이 공연은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가 올림픽 문화예술축전에 초청하기 위해 1년 넘는 기간 접촉한 끝에 결정된 것이다. 소련을 대표하는 볼쇼이 발레단의 내한은 당시 국민적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이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 등 소련 예술단체들이 앞다퉈 내한공연을 하는가 하면 고려인 3세 소프라노 넬리 리 등이 국내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당시 국내에서 소련 예술단체 유치 경쟁이 과열돼 이를 우려하는 기사까지 나왔을 정도다. 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민주주의를 표방한 러시아가 등장하면서 문화예술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다. 특히 발레에선 러시아의 영향력이 한국에 깊숙이 미쳤다. 러시아 안무가와 교사의 내한 및 한국 학생들의 러시아 유학은 한국 발레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우선 한국의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은 바로 러시아 양대 발레단인 볼쇼이 발레단과 키로프 발레단(지금의 마린스키 발레단)을 오랫동안 이끌었던 예술감독들이 오면서 지금의 스타일이 만들어졌다.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전 키로프 발레단 감독은 94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로 처음 손을 잡은 이후 98년부터 10년간 예술감독을 지냈다. 그리고 유리 그리고로비치 전 볼쇼이 발레단 감독은 2000~2001년 국립발레단에서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개원 이후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김선희 교수의 지도를 토대로 러시아 발레 교사들이 초청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발레는 러시아 바가노바 스타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달 말 ‘러시아 발레의 요람’ 바가노바 국립발레아카데미 교수진과 학생들이 처음 내한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학생들과 합동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러시아 시즌의 폐막 공연이지만 코로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 의미 있는 공연으로 러시아 시즌을 끝맺기를 바란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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