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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팬데믹 ‘1918년 독감 대유행’… “진실을 말해야 한다”

[책과 길] 그레이트 인플루엔자
존 M 배리 지음, 이한음 옮김
해리북스, 776쪽, 3만8000원

1918년 독감 대유행 당시 미군의 응급 병원 모습이다. 독감 바이러스가 가장 먼저 퍼진 곳은 군 기지였다. 아래 사진은 당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야외 예배를 보는 장면이다. 대다수 도시는 대중 모임을 금지했고, 교회들은 예배를 취소했다. 해리북스 제공

현재의 코로나19 팬데믹과 견줄 수 있는 전염병 사태라면 100년 전인 1918년 독감 대유행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태는 전 세계 구석구석을 남김없이 공격했고 1억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당시 세계 인구 18억명 중 5% 이상이 사망했다.

미국 툴레인대 공중보건 및 열대의학과 교수인 존 M 배리가 쓴 ‘그레이트 인플루엔자’는 1918년 독감 팬데믹을 종합적으로 조명한 책이다. 팬데믹 당시는 물론 전후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다룬다. 특히 1918년 독감 대유행을 “자연과 현대과학이 전면적으로 충돌한 최초의 사건”으로 보고 여기에 대응한 과학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바이러스 과학 이야기, 의학사와 과학사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유행병에 맞선 투쟁은 두 가지 전선에서 벌어졌다. 국가의 모든 자원을 총동원하는 투쟁과 과학자들의 투쟁이었다. 과학자들은 당시 의학과 과학의 한계 속에서도 분투했지만 팬데믹이 종식될 때까지 원인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의학이 과학으로 향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세기 말까지 미국 의학은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감 대유행은 과학이 아니라면 사태를 이해할 수도 없고 해결할 수도 없음을 알려줬다. 의학은 무엇보다 과학이 돼야 했다.

“궁극적으로 그 독감의 세계적 대유행 사태에서 나온 과학 지식은 의학의 미래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곧바로 가리키고 있었다. 과학 지식이야말로 의학의 미래였으며,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당시 정치와 언론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책의 목적 중 하나다. 그들은 독감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했으며, 대중에게 위험을 알리지 않았다. 미국에서 최대의 비극은 필라델피아에서 벌어졌는데, 시 당국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가행진을 강행했다. 그로부터 72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그 도시에 있는 31개 병원의 모든 병상이 꽉 찼다. 무수한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언론은 “겁먹지 말라” “독감 유행이 정점을 지났다”는 보도만 반복했다. 이 감염병이 ‘스페인 독감’이라고 알려진 것도 당시 스페인 신문만 그 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책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정부의 무능 때문에도 수많은 사람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1918년이 남긴 한 가지 지배적인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정부가 위기 상황에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진실은 관리하는 게 아니다. 진실은 말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2005년 처음 출간돼 미국의 국가 전염병 방어 체계 수립에 영향을 미쳤다. 출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 책을 읽고 국가 차원의 종합적인 팬데믹 대비 계획 수립을 지시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뒤 미국 언론과 빌 게이츠 등이 이 책을 다시 불러냄으로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코로나 국면에서 미국 정부와 언론이 즐겨 찾는 코멘테이터다.

인류를 절멸 위기까지 몰고 갔던 1918년 독감 대유행은 두 가지 이유로 소멸됐다. 하나는 면역이었다. 면역력을 획득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다시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 모든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며 치명성과 폭발성에 있어 ‘평균으로의 회귀’를 보여주는데, 당시의 독감 바이러스도 치명적 단계를 거쳐 덜 치명적인 쪽으로 변해갔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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