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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희망의 사람들] 두루미들은 철조망 가로질러 남북을 오가는데…

너른 벌판 한탄강·임진강 최적 서식지
해마다 10월 말이면 DMZ 일대 찾아

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지난달 말 연천군의 유일한 민통선 마을인 이곳의 망제여울에 두루미 세 마리가 쉬고 있다. 두루미는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 ‘평화의 새’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망제여울이 보이는 곳에 지난 10월 ‘두루미 관망대’가 설치 됐다. 두루미 사진은 그 관망대에서 찍었다. 지난해 보지 못하던 새로운 지형물의 등장에 놀란 탓인지 여기서 쉬는 두루미들의 개체 수가 과거보다 준 것 같다고 두루미 보호단체는 전한다.

“저기 두루미들 보이지요. 저 새들이 앉은 모래톱이 북한 땅이에요.”

경기도 연천군 중면 비무장지대(DMZ) 태풍전망대에선 북한의 산하가 800m 코앞에 보였다. 인공기가 걸린 북한군 초소가 망원경에 잡히는 그곳에서 굽이져 흐르는 임진강 상류를 가리키며 연천에 기반을 둔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 백승광 대표가 말했다.

그는 “임진강은 휴전선이 강폭 중간을 지나는 남북 공유 하천이다. 북에서 아침에 깨어난 두루미가 남으로 날아와 먹이 활동도 하며 놀다 저녁에 돌아간다. 새는 저렇게 자유로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철책을 가로지르며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 ‘평화의 새’라 불리는 두루미를 찾아 지난달 말 연천군 중면 횡산리 민통선 마을에 갔다.

흰두루미(단정학)와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수명이 50∼80년이라 장수의 상징으로 사랑받았던 학이 바로 흰두루미다. 재두루미는 몸통이 회색으로 개체 수가 흰두루미보다 많다. 두루미류는 경계심이 많은 탓에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초지와 습지 등지에 서식한다. 안보상의 이유로 일반인 접근이 통제된 DMZ와 민통선 마을이 역설적으로 두루미의 낙원인 셈이다.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연천 파주 김포 강화 등 임진강과 한탄강, 한강을 따라 이어지는 DMZ 라인에는 두루미들이 해마다 10월 말이면 러시아 시베리아 아무르강에서 혹한을 피해 날아와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3, 4월 돌아간다.

이 가운데 너른 평야와 한탄강이 있는 철원과 임진강이 굽이 흐르는 연천이 두루미의 최대 서식처다. 두루미는 잠자리를 택할 때 천적의 접근을 쉽게 알아챌 수 있게끔 시야가 넓게 트인 공간, 벌판, 물가 등을 선호한다.

철원군 민통선 마을인 동송읍 이길리와 하갈리, 양지리는 30년 전부터 두루미 마을로 알려졌다. 연천군 민통선 마을인 중면 횡산리는 2004년부터 조금씩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백 대표는 “임진강의 넓고 얕은 여울이 두루미에게 아주 편한 장소다. 특히 연천은 산간 지역에 율무밭이 많은데 율무는 두루미가 좋아하는 먹잇감”이라며 “점점 연천을 찾는 두루미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한 횡산리는 1970년대 초반 정부의 식량증산계획에 따라 형성된 전략촌이다. 횡산리 이장 김학용씨는 “충남 천안이 고향인데, 20대 시절이던 75년 군인들의 제대 후 영농 활동 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왔다가 아예 정착했다”면서 “86년에 행정구역상의 정식 마을이 돼 44가구 200여명 주민이 이주해왔다. 면사무소 마을회관 보건소 등이 그때 생겼다”고 설명했다.

당시 전략촌으로 함께 형성됐던 삼곶리가 민통선 마을에서 해제되면서 횡산리는 초소에서 검문을 받고 출입허가를 받아야 하는 연천의 유일한 민통선 마을로 남았다. 벼 콩 율무 농사를 짓는 횡산리와 삼곶리 주민들에게 두루미는 새로운 생태 자원이 됐다. 그래서 일찌감치 두루미의 낙원으로 소문이 난 철원은 벤치마킹 대상이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에 조성된 ‘DMZ두루미평화타운’. 두루미 서식지에 대한 연구와 시범 사업을 위해 폐교된 양지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철원 이길리는 겨울철이면 두루미를 관찰하고 촬영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진작가나 관광객을 위해 진작부터 주차장까지 갖춘 ‘두루미 촬영지’를 만들어 입장료를 받고 있다. 단층 5개 건물로 총 80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주민들은 습지를 좋아하는 두루미의 생태를 고려해 환경단체와 함께 겨울철에도 논에 물을 대는 무논 사업을 한다.

연천군 중면에서도 지난 10월 횡산리 망제여울에 ‘두루미 관망대’를 조성했다. 망제여울은 횡산리에서 필승교 여울과 함께 두루미가 가장 선호하는 서식지로 꼽힌다. 예년 같으면 두루미가 떼를 지어 노을을 배경 삼아 물가에서 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두루미들이 망제여울 건너편에 못 보던 지형지물이 들어서자 겁을 먹고 가까이 날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민통선 마을 안팎에는 이처럼 사람들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민통선에서 해제된 삼곶리 수몰지에는 관광수입을 위해 강가 수만 평에 ‘댑싸리 공원’을 조성해 축제를 한다. 검은색 햇빛 차단막을 치는 인삼 경작지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관광과 개발은 두루미에게 위협적인 환경 요인이다.

임진강 하구인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구의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모습.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이 옛 영광을 증거하는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던 곳이다. 아래 사진은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이를 재현한 모습.

개발할 것이냐, 보존할 것이냐. 가난한 접경 지역 마을 연천의 고민은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임진강 하구인 연천 장남면 고랑포구는 조선시대에는 개성 다음으로 큰 상권이자 한강 이북에서 가장 큰 포구였다. 서울의 포목과 잡화, 강원도와 경기도의 물산이 황포돛배에 실려 이곳에서 거래됐다. 사람과 물자가 늘어나며 일제강점기에는 버스를 증편한다는 뉴스가 나올 정도였다. 1930년대에는 화신백화점 분점까지 고랑포구에 생겨났다. 6·25전쟁 때 폭격을 맞으면서 포구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고구려 3대성의 하나인 호로고루성이 과거의 영광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연천은 국토의 변방이 됐다. 같은 접경 지역이지만 너른 평야 덕분에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철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미래의 생태 자원인 두루미를 살리기 위해선 장기적 관점에서 두루미를 봐야 한다. 망제여울의 두루미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고랑포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축조된 고구려 호로고루성.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연천·철원=손영옥 문화전문기자·조현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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